“개혁 흉내”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자동 총대와 권력 카르텔을 해체하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위기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다. 이것은 ‘관리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 붕괴이며, 일시적 혼란이 아니라 체질 자체가 썩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최근의 사무총장 해임은 개혁의 출발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을 비껴간 면피용 조치에 가깝다. 사람 하나를 바꿔 놓고 개혁을 말하는 순간, 이미 개혁은 실패한 것이다.
문제는 인물이 아니라 권력 구조다.
한기총을 병들게 한 것은 자동 총대 제도를 축으로 한 특권 고착 시스템, 그 위에서 반복되어 온 과열 선거와 분열, 소송과 재정 방만, 그리고 이를 방조하고 유지해 온 내부 카르텔이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어떤 인사를 앉히든, 한기총은 결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자동 총대 제도, 분열을 제도화한 구조적 폭력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가 정책 경쟁이 아닌 정치 전쟁으로 변질 된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임원과 증경(명예)회장에게 자동으로 총대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는 대표성을 교단이 아니라 ‘직함과 경력’에 예속시켰고, 일부 인사들의 표 영향력을 구조적으로 보장해 왔다. 선거는 치열한 논의의 장이 아니라, 줄 세우기와 표 관리의 전장이 되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편 가르기, 불복, 고발과 맞고소, 파벌 싸움, 소송과 분열. 이것은 우연도, 일시적 현상도 아니다. 자동 총대 제도가 만든 필연적 결과다. 이 제도를 존치 시키는 한, 한기총은 영원히 선거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동 총대는 ‘전통’이 아니라 분열의 엔진이다. 더 미화할 수 없다.
예외를 핑계로 자가면역을 거부하는 조직
한국교회 주요 연합기관들은 이미 변화의 길을 택했다. 자동 총대를 폐지하고 교단 파송 원칙을 강화했으며, 교단 규모에 따른 총대 수 조정, 신학 검증, 활동 실적 반영, 이단성 논란 단체에 대한 실사 제도를 도입했다. 공정성과 대표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러나 한기총은 여전히 ‘우리는 다르다’라며 예외를 자처한다. 직함만 있으면 총대가 되는 구조, 반복적 권력 재생산이 가능한 체계. 이것이 과연 연합기관의 모습인가. 이제 이 구조는 특권이 아니라 부패의 증식 장치임이 명백해졌다.
재정 구조, 한기총의 도덕성을 갉아먹는 또 다른 축
한기총은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인건비와 임대료, 고정 운영비를 유지해 왔다. 조직이 수행하는 실제 기능과 비용 구조는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 연합기관이 감당해야 할 공적 사명보다 내부 유지 비용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은 심각하다. 문제는 단순한 절감이 아니라 철저한 구조조정이다. 조직을 슬림화하지 않으면 재정은 계속 권력의 연료가 되고, 권력은 개혁을 거부하게 된다. 재정이 투명하지 않으면 개혁은 구호에 불과하다.
총무협의회, ‘자문’을 가장한 그림자 권력
총무협의회는 자문기구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정책과 인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책임은 불분명하고 권한은 막강한 이 구조는, 민주적 리더십을 잠식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총무협의회는 자문 기능 외 의사결정 개입을 전면 금지해야 하며, 인사·정책 개입을 차단하고 회의 공개 원칙을 의무화해야 한다. 권력은 빛 아래 두어야 통제 된다.
인물 교체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한기총의 위기는 ‘사람이 잘못돼서’가 아니다.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그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개혁은 결국 또 다른 ‘연출된 변화’에 그친다. 지금 한기총에 필요한 것은 미용이 아니라 수술이며, 관리가 아니라 해부다.
개혁의 최소 조건, 이것 없이는 모두 거짓이다
다음 여섯 가지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존립 조건이다. 1. 자동 총대 전면 폐지, 2. 교단 규모 비례 총대 배정, 3. 과도한 인건비·임대료 구조 전면 조정, 4. 총무협의회 권한 제한과 투명화, 5. 재정 전면 공개와 외부 감사 의무화, 6. 이단성 논란 단체 전수 실사 및 재검증. 이 여섯 가지가 없는 개혁 선언은 기만이며, 책임 회피다.
한기총은 지금 선택해야 한다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 구조개혁을 통한 회복의 길인가, 아니면 분열과 신뢰 상실의 수렁인가. 얼굴을 바꾸는 개혁이 아니라, 시스템을 해체하는 결단만이 한기총을 살릴 수 있다. 자동 총대를 붙드는 순간 분열은 계속되고, 재정 구조를 방치하는 한 불신은 고착되며, 책임 없는 권력 구조가 남아 있는 한 개혁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더 말로만의 개혁은 허용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철저한 구조 개편이다. 그리고 그 개편은 고통스럽더라도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한기총은 선택해야 한다. 개혁이냐, 소멸이냐. 더 이상 회색지대는 없다.
노곤채 목사/ 뉴스앤넷 대표, 한국기독언론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