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사명자의 길을 가다(4-2)

좌절된 이혼사건

문준경은 청강생으로 수업을 들으며 이전보다 성경을 더 깊이 알아 갔다. 사역자들이 신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청강생이라는 자신의 신분이 신학생으로서 얼마나 불리하고 어려운 것인지 절감하며 계속 힘든 상황을 맞이하였다. 청강생은 기숙사 입학 자격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학비는 물론이고 생활비도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즉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을 견디어 나가야만 했다. 사실 문준경의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신학생 문준경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신이 정식 신학생이 되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남편이 있는 기혼자라는 이유임을 깨닫고, 목포로 내려가서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고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 다. 그것은 바로 남편과의 이혼이었다. 남편과 이혼을 한 상태여야 청강생이 아닌 정식 신학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정식 신학생이 되면 기숙사에 입소할 수 있고, 학비도 지원받기 때문에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학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따라서 이혼 문제는 문준경에게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여성이 먼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예외는 있었다. 만일 아내가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아내가 아들을 출산하지 못할 때, 음탕한 행동을 할 때, 질투할 때, 불치의 병이 있을 때, 말이 너무 많을 때, 남의 물건에 욕심을 내어 훔칠 때는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었다. 문준경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을 이유로 삼은 칠거지악에 희망을 걸고, 결연한 마음으로 남편을 찾아갔다. 윤리와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이러한 의지는 정식 신학생이 되려고 했던 열정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문준경은 남편에게 지금의 사정과 형편을 말하고 이혼을 요구했다. 이제까지 그렇게 어려워도 문준경으로부터 이혼이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진지하고 당당하게 이혼을 강력하게 제기하자, 남편 정근택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남편 정근택은 한동안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고, 여러번 찾아와서 애원하고 부탁하는 문준경의 이혼 요구가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사실 남편 정근택은 이혼을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 문준경과의 만남을 어떻게 해서든 회피하려고 했다. 며느리가 이혼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문은 시댁 식구들에게까지 알려졌다. 정씨 집안 식구들이 모여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정씨 가문에게 이혼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가문에도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씨 집안 식구들은 이혼은 허락될 수 없는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문준경이 생각했던 결과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혼 문제가 흘러갔다. 그녀는 정식 신학생이 되기 위해 이혼하고 싶었다. 그동안 자신에 게 무관심했던 남편을 이제는 떠나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왜 나에게는 이혼하는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문준경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녀가 할 수 일은 이제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문준경은 이혼 문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는 오로지 하나님께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청강생으로 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우선 당장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몇푼 없는 돈으로 쌀을 사고, 그것으로 하루 한 끼만 먹고 지내기로 했다. 배 고픔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다. 허기에 지쳐 방 안에 쓰러져 있는 날이 많아졌다. 천장이 노랗게 보일 때가 있었지만, 성서학원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어지러움을 이겨내 보았지만,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학교에 도착해서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때, 집에서 느꼈던 노란 천장이 거기서도 보였다.

“주여, 저의 형편을 살피사 저를 도와주옵소서.”

고통 가운데 새겨진 사명

문준경은 속이 뒤틀리는 것같이 아플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숙사 식당을 찾아가서 학생들이 먹다 남긴 누룽지와 숭늉을 얻어먹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허기를 면해 보려고 했지만, 몇 번이나 마음을 고쳐먹고 부끄러움을 극복해야 했다. 용기를 내서 찾아가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 찾아가는 것은 민폐였다. 결국 문집사는 원장을 찾아가서 다시 한번 사정을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원장님, 문준경입니다.”

“어서 들어와요.”

“원장님, 지를 원입생으로 받아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참말로 아무도 찾지 않는 저 섬들을 돌아다니면서 불쌍한 영혼들을 전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구만요. 이렇게 공부하다가는 굶어 죽을 것 같고 끝까지 학업을 마칠 수 없을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든다니께요. 배고파서 공부에 집중하기도 어려울 때가 많으니 참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라. … 원장님, 참말로 어렵단 말이에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면 어느 정도 숙식이 해결된다니께 공부하는 데 더 전력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증말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려서 죄송한디요, 원장님, 제발 지 사정을 고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준경 집사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이명직 원장은 안타까워했다.

“문 집사님, 제가 그 사정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칙이라는 것이 한번 깨지면 다음에는 걷잡을 수 없지 않습니까? 잠시만 참고 공부하시면 더 좋은 해결책이 생길지도 모르니, 이 문제를 놓고 함께 기도하면서 시간을 가져 봅시다.”

문준경은 원장으로부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장 현실 속에서 큰 어려움이 해결될 수 없다는 대답에 다시 실망하였다. 그리고 이제 이 문제는 문준경을 슬프게 만들었다. 어려운 마음을 간신히 끄집어내어 자존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원장에게 말했지만 당장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문준경은 방을 나와 예배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배당 강대상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께만 매달리며 하소연했다.

“주님! 어떻게 이다지도 힘이 듭니까? 왜 저에게 이렇게 힘든 고통을 내리십니까? 지가 호의호식하며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주님을 더 잘 따르고자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주님, 제 배고픔을 해결해 주세요. 원생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하루라도 빨리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문 집사는 이렇게 눈물로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쏟아 내었다. 탄원의 기도를 드리며 한참을 눈물로 강대상을 적실 때 예배당 밖에 서 어느 한 남학생의 찬송 소리가 문 집사의 귀에 은은히 들리기 시작 했다.

새찬송가 544장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겁을 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당했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힘써도 못하네. 말과 뜻과 행실이 깨끗하고 착해도 다시 나게 못하니 힘써도 못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당했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참아도 못하네. 할 수 없는 죄인이 흉한 죄에 빠져서 어찌 아니 죽을까 참아도 못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당했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믿으면 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당했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은은하게 들려오는 찬송의 가사는 문준경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문준경은 하소연하고 원망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시는 예수님의 형상이 뚜렷하게 보였다. 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시는 예수님의 얼굴에 문 집사는 회개하기 시작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은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참을 수 없는 고통 가운데 계신데, 이 죄인이 배고픈 고통 하나 이겨 내지 못하고 불평과 한숨 속에 있었나이다.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작정해 놓고도 작은 고통 하나 참아 내지 못하고 괴로워했나이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의 나약한 마음을 믿음으로 강하게 하시고,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강한 믿음을 주옵소서. 주님께서 부탁하신 수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옵소서!”

고통과 탄식 가운데 흘러내린 눈물의 기도는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회개의 눈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문준경의 기도에는 원망이 사라지고 믿음의 결단이 이어졌다. 눈물과 콧물로 뒤 범벅이 된 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지난 세월의 아픔과 시련이 지나갔지만, 이것이 모두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시고 사명자로 부르시어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한 것이었음이 뼛속 깊이 아로새겨졌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저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저를 다스려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고통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로 바뀌고, 회개의 눈물은 사명의 눈물로, 사명의 눈물은 감사의 눈물로 바뀌었다. 흐르는 눈물 속에서 문준경 집사는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참평안을 누렸다. 분명 이전과는 다른 평안이 문준경 주변에 가득했다.  

*이 글은 한국교회총연합에서 발행한 <한국교회 선교사 전기 시리즈>의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순교자 문준경"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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