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신앙입문과 교회생활(3-3)

목포교회에서의 장석초 목사

장석초 전도사가 목포교회에 와서 사역할 초창기에, 문준경은 그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설교는 목포 교회 성도들에게 체험적 신앙과 말씀에 철저한 순종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오늘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 잘 들으시기 바라오. 지가 만난 예수님 이야기를 하갔소이다. 지는 과거에 첩도 데리고 사는 아주 형편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거리를 걷다가 찬송 소리가 들려서 지도 모르게 교회당에 들어가 설교를 들었는데, 그냥 까닭 없이 눈물이 마구 흘러나왔지라. 그리고 그후부터 믿음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성경을 읽고 기도에 전념하니 첩이 저의 변한 모습을 보고 재미가 없어서 스스로 나가 버렸시오. 지가 쫓아낸게 아니여요. 얼마나 고맙던지 성령님이 하신 일인 것으로 믿어요. 그리하여 본처와 다시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가정이 회복되니 마음이 편해졌고,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던 것이에요. 다 하나님의 은혜였지요.”

문준경은 장석초 전도사의 신앙 체험을 들으면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원망만 했던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남편에게 서운함과 원망의 마음보다는 이제 긍휼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당시 목포교회에는 문준경과 같은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었다. 바로 김학섭이라는 여인이었다. 이 여인도 아이를 낳지 못해 남편에게 버림받자 생을 끊으려 했다. 흰 소복을 입고 물에 뛰어들려고 할 때, 마침 그곳에 있었던 장석초 전도사를 만나 생을 건질 수 있었다. 그 후 장전도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전도인의 사명을 헌신적으로 감당하게 되었다. 김학섭은 나중에 전도사가 되어서 장 목사의 사역지였던 함열교회에서 계속 사역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녀는 꾸밈이 없고 사명감에 철저해서 교회에서 받은 적은 사례비를 모아 교회가 건축된 후에 강대상 헌금으로 바쳤고,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늘 사랑으로 성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었다.

문준경과 김학섭은 이렇게 목포교회 장석초 전도사의 도움으로 신앙의 기초를 쌓아 갈 수 있었다. 그의 단호하고 타협 없는 믿음은 이 두사람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사역의 꽃을 피우게 하였다. 세상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었던 이 두 여인은 장 목사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사명을 깨닫게 되었고, 버림받은 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는 새로운 인생이 되어 새로운 소망과 목적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집사가 된 문준경, 전도사역에 앞장서다

문준경은 1927년에 목포교회에 입교한 후, 6개월이 지나 학습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6개월 후인 1928년 4월에 세례를 받았다. 당시 장석초 전도사는 아직 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던 시기이기에 전성구 목사의 집례로 세례식이 거행되었다. 문준경은 이전에 죄악된 날들을 회개하면서 이제부터는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 된 새로운 피조물로서 감격하였다. 그녀는 세례식 가운데 주님의 부활처럼 다시 태어난 것임을 영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문준경은 세례를 받은 후 집사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를 더욱 주목하였다. 문 집사는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당시 부르짖었던 말인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 와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60절)라는 고백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처럼 돌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노라 몇 번이고 다짐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장면(Merian, Matthäus the Elder, 1593~1650).
▲스데반 집사의 순교 장면(Merian, Matthäus the Elder, 1593~1650).

집사가 된 문준경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제 자신만 믿고 혼자만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친정집이 생각났다. 그래서 증도에서 나올 때에도 머뭇거렸던 암태도 수곡리 아버지의 집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동안 딸이 시집가서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에 늘 염려했던 친정아버지는 딸 준경이가 오자,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너무 좋아하셨다.

“아부지~ 엄니~.”

“준경이 목소리 같은데, 준경이 왔니?”

“네, 아부지, 저 왔어요. 준경이에요.”

“어서 오렴. 잘 왔구나. 고생이 많다고 들었다.”

부녀간의 대화는 썰렁했던 친정집을 따뜻한 공기로 바꾸어 놓았다. 준경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부터 목포로 이주하여 사는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 놓았다. 그러면서 문준경은 부모님께 복음을 전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애야, 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까지 찾아온 것 보면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가 보구나. 너무 염려치 말고 말해 보거 라.”

“아부지, 지가 이제까지 친정에서 귀여움받고 행복하게 지냈어라. 아부지 말씀대로 시집가서 시부모님 잘 모시고 살았지만, 애가 없어서 남편은 둘째 아내를 맞이한 것 아시재요? 지는 마음이 너무 안좋았어라. 오죽하면 가슴에 한이 맺혀 죽으려고까지 했구만요.”

“그럼, 내가 잘 알지. 아버지도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겠냐. 이것이 너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참고 지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정씨 집안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주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그러니 괴롭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지내 보거라.”

“아부지, 지가 괴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요. 지는 지금 너무 신기 하고 이전과는 너무 다른 생활을 하고 있구만요. 그라니께 이제 지 걱정하지 마시고, 지는 지금 많이 행복한지라.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지라.”

“시방 뭐라고 했니?” 

“어떤 부인이 지에게 예수님에 관한 얘기를 한 것을 듣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께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당께요. 아부지도 예수님 믿으시고 구원받아 낭중에 천당에 가셔야죠. 우리 사람 모두는 죄가 있어서 스스로 깨끗할 수 없지만, 예수님이 이 모든 죄를 대신해서 담당하고 돌아가셔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은께 로… 아부지도 천당 갈 수 있구만요. 아부지도 예수님 믿고 천국 가세요.”

“니가 도대체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한다냐. 시방 서양귀신 애기 한다냐. 니가 외로워서 이자는 미쳐 뿌렀구나.”

“아부지, 예수 믿어야 천당 간당께요.”

두 사람의 대화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옆에서 듣고 있던 어머니도 걱정스러워 한마디 거들었다.

“아이고, 영감, 신경 쓰지 말고 너무 흥분하지 말랑께요. 그러다가 어지러워 쓰러진당께. 준경이는 이제 고만하고 어매가 다 이해했으니 가만 좀 있으라.”

“왜놈들이 나라 말아먹은 것도 분통한데, 서양 놈도 예수인지 지랄인지 하는 것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을 농락하니 나라꼴이 지금 이 모양 이꼴이지 뭐다냐.”

“아부지, 예수님 믿어야 천당 간당께요. 진짜라니까요.”

완고한 아버지는 준경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마당 우물가에 있는 썩은 물을 퍼서 준경의 머리 위로 끼얹어 버렸다. 문 집사는 박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문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 제일 먼저 달려왔건만, 박대를 당하고 다시 목포로 돌아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문 집사는 이런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돌무더기에 파묻혀 죽은 스데반 집사를 생각하니 이러한 수모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마음에서 찬양이 흘러나왔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구주 예수 떠나가면 죄 중에 빠지리.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실 이 주 예수.

문준경의 마음에 우렁차게 울려 퍼진 이 찬송은 훗날 신안군 섬 지역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메아리쳐 전해질 것이다. 그래서 섬 지역 곳곳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문준경 집사를 사명자로 훈련하고 계셨다.

문준경 집사는 어떤 고난에도 실망하는 마음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핍박하는 영혼들을 긍휼히 여겼다. 집사 시절에 문준경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족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압해와 지도읍, 신안군의 어느 면이든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왔다. 그 결과 눈물로 뿌린 복음의 씨앗은 문준경 집사의 친정아 버지에게도 심겨져서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

문준경의 친인척들에게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한국 교회의 성장을 주도했던 거목들(김준곤 목사, 이만신 목사)을 낳았고, 그의 집안은 현재에도 믿음의 자손들로 곳곳에서 말없이 헌신의 삶을 살고 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복음의 놀라운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가고 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막 4:8). 

*이 글은 한국교회총연합에서 발행한 <한국교회 선교사 전기 시리즈>의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순교자 문준경"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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