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신앙입문과 교회생활(3-1)

증도를 떠나 목포로

문준경은 더 이상 증도에 남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결혼 생활 20년 동안 정씨 집안이 있었던 증도 등선리와 증동리는 평생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의 곁에는 남편도, 아껴 주시던 시아버님도, 마음을 쏟은 문심과 태진이까지,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문준경은 친정 부모님이 그리웠다. 그렇다고 고향 암태도 친정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혼한 여자가 다시 친정으로 돌아올 경우,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릴 모습을 상상하기도 싫었다.

문준경의 상황을 알고 있는 친정 오빠는 형제들이 있는 목포로 나와서 형제들과 왕래하며 지내라고 권유했다. 평소 같으면 아직 시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자신이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태진을 떠나보낸 허전한 마음은 며느리의 의무감으로도 덮어 버릴 수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은 문준경은 친정 큰오빠가 말한 대로 육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큰오빠가 목포에서 큰 숙박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근처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것저것 세간을 들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가족의 도움으로 목포에 거처를 마련한 문준경은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여기 단칸방에서 무엇을 하며 살지?’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떼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이제는 정씨 집안의 며느리로 해야 할 일들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혼자 자립하면서 꿋꿋하게 살아 내야 했다. 동물원 사육장에 있던 동물이 야생으로 보내질 때 그 자유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문준경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매우 어색해했다. 단칸방에 혼자 있을 때면, 지난 20년 동안의 결혼 생활이 떠올랐다. 물론 좋은 기억도 있지만, 홀로 있게 된 자신의 처신을 직관할 때면 비관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문준경에게는 지금 무엇인가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이 필요했다.

문준경은 어릴 적에 했던 바느질을 생각했다. 친정아버지의 불호령으로 글을 포기하고 어머니를 도우면서 익힌 바느질이었다. 시댁에 있을 때, 바느질로 옷을 만들어서 시장에 팔았던 일도 있었기에 삯바느질은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재봉틀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재봉틀

‘누구에게도 도움을 바라지 말고 스스로 해결해야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제.’

문준경은 이사 간 목포에서 삯바느질 일을 시작했다. 그녀의 바느질 솜씨에 손님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재봉틀로 옷을 수선하고 누비옷도 만들어 팔았다. 그러면서 단골손님도 생겼다. 그러나 홀로 지내는 깊은 외로움은 하는 일을 통해서도 해소될 수 없었다. 남편이 있지만 둘째 부인과 살고 있어서 자신은 홀로 있는 생과부나 마찬가지였다.

삯바느질을 하며 단칸방에 홀로 사는 여인이 있다는 소문이 주변 사람들에게 서서히 알려졌다. 바느질을 잘하는 문준경에 대한 여인네들의 입소문은 금방 퍼져 나갔다. 여인이 독립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삶에 열정을 불어넣었지만, 여인 홀로 일한다는 것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고충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밤이 문제였다. 문을 단단히 잠가 두었지만, 문 쪽에서 소리가 나면 조용히 숨을 죽여야 했다. 누구라도 와서 괜스레 해코지를 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슨 소리가 나든지 깊은 밤에는 무조건 이불을 뒤집어쓰고 모르는 척 잠을 잤다. 하지만 밤중에 작은 소리라도 나면 그 날은 선잠을 자야 했고, 그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밤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 다음 날 피곤한 몸으로 밀린 삯바느질을 하게 되면,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 보였다. 자신을 든든히 지켜 줄 사람은 없고, 누구 하나 자신의 처지를 공감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손님으로부터 전도를 받다

문준경은 평소와 다름없이 주문 받은 삯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 날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서 피곤해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 들어가도 될까요?”

문을 두드리면서 소리가 들렸다. 문준경은 손님이 왔나 보다, 하고 재봉틀을 돌리면서 소리를 높였다.

“야, 어서 들어오이소.”

들어온 점잖은 부인에게 문준경은 늘 손님을 대하던 대로 말했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 근처 북교동에 있는 목포교회에서 와쓰라. 근디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디 어디 아프신감요?”

“야, 아니, 어제 잠을 잘 못 청했구만요? 혼자 있다 보니 홀가분할 것 같은디두 여간 신경 쓸 일들이 많구만요? 밤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쉬엄쉬엄 하시랑께.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네 그랴. 지가 한번 기도해 주고 싶은디 괜찮겠소?”

“…….”

북교동에 있는 목포교회(현 북교동성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문경자 집사는 이렇게 문준경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희망 없이 삯바느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문준경에게 다가가 예수님의 사랑과 평강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문준경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손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문준경은 예수교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친정의 형제들이 예수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었지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이 부인의 말에 동의하기도 어색했다. 하지만 문준경은 그 손님의 마음을 알기에 냉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문경자 집사는 자신의 동생인 양 마음을 다해 간절히 기도했다. 문준경의 아픔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 기도는 성령이 이끄시는 기도였다.

문준경은 바느질을 하고 있는 손을 풀고 그 기도 소리를 들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받았던 서러움과 아픔을 모두 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쏟아 놓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기도를 마친 문 집사는 인생의 고단함 가운데 찌들어 있는 문준경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 그동안도 수고 많이 하셨어라. 세상 누구 하나 우리 맴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세상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정말 세상에는 믿을 만한 것이 없는지라.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 주셨어라. 그분이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대신해서 몸 바쳐 피 흘려 돌아가시기까지 하셨는데, 그분만은 믿을 수 있는 분이셔라. 그분을 한번 믿어 볼랑가요? 그분을 믿으면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복을 받고, 영혼도 천국에 간당께로 한번 사는 인생 믿고 복된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삯바느질하고 있는 문준경
▲삯바느질하고 있는 문준경

목포교회 전도 부인으로 활동 중인 문 집사는 이렇게 문준경에게 복음을 건넸다. 문준경은 태어난 지 37년 만에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내 앞에 있는 이 여인이 내 처지를 알아주는 것만 같아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가 어두울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끊이지 않는 대화 속에서 문준경은 여러 번 울고 오열했다.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는지 울고 또 울었다. 이 두 부인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서로를 공감하면서 위로의 영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문준경의 마음으로부터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심이 올라왔다.

‘이제까지 의지할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혈혈단신의 몸으로 살았는디, 손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내 인생은 새롭게 태어나는 기라. 그래, 좋다. 한번 믿어 보자.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속는 셈치고….’

외롭고 힘든 인생, 연약한 여인이 홀로 모든 짐을 진 채 그저 운명 이려니, 하고 소망 없이 살아가는 문준경에게 거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그녀의 인생을 덮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 문준경은 앞으로 자신의 인생 가운데 펼쳐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어떠할지 알지 못했지만,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그녀의 인생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으로 전개되어졌다. 

*이 글은 한국교회총연합에서 발행한 <한국교회 선교사 전기 시리즈>의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순교자 문준경" 내용입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