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결혼 생활(2-3)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순교자 문준경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순교자 문준경

둘째 아내의 아이를 받다

병세에서 회복한 문준경은 남편에 대한 작은 소망도 이제는 스스로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그녀는 시부모님만을 봉양하면서 이 시기를 견디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문준경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던 문준경은 남편을 차지한 여자인 둘째 부인을 “작은 댁”이라고 불러 주었다. 얼마 후 작은댁 소복진이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문준경은 만삭이 되어 괴로워 하는 작은댁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거동이 힘든 작은댁을 위해 방에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해 주었다. 서운한 마음도 있을 법한데, 문준경은 지극 정성으로 그녀를 돌보았다.

출산은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는데, 아이가 예정보다 이른 시기에 나오려고 했다. 지금 태어나면 여덟 달 만에 태어나는 셈이었다. 문준경은 급하게 산모에게 찾아가 출산을 도왔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받아 냈다. 갓 태어난 이 여아는 너무나도 약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목욕을 시키다가 아이가 다칠 것 같았다. 문준경은 자신의 혀로 온몸 구석구석을 핥아서 깨끗하게 해 주었다. 자기 자식도 아닌데, 문준경은 그 아이를 보면서 마치 자기 자식인 양 최선을 다했다.

이 모든 지극 정성을 지켜본 큰시숙 정영범 씨는 문준경에게 감탄하면서 몹시 고마워했다.

정근택 씨(앞줄 가운데)와 두 번째 아내 소복진 씨(앞줄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정근택 씨(앞줄 가운데)와 두 번째 아내 소복진 씨(앞줄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제수씨, 동생 근택이가 딸을 낳은 것은 다 제수씨 덕이오. 그래서 내가 그 딸의 이름을 ‘문심’(文心)이라고 했소. 제수씨의 이름 성(姓)과 제수씨의 마음을 합해서 문심이라고 했는데, 괜찮겠소? 제수씨 정말 고맙소. 제수씨 같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으오.”

문준경은 자신이 낳은 아이도 아니었지만, 십여 년 동안 자식이 없어서 괴로웠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남편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해 생겼던 무거운 죄책감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착한 심성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러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겠는가. 문준경은 작은댁이 다시 회복되기까지 산모와 태어난 아이, 문심을 돌보았다. 문심을 자기 자식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시아버지의 죽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집안에서 며느리 문준경을 아껴 주시던 시아버지가 날마다 쇠약해져 갔다. 문준경은 숙환으로 누우신 시아버지를 밤을 새워 가며 간호했다. 사람들에게 수소문하여 몸에 좋다는 약을 구해서 지어다 드리며 정성을 쏟았지만, 병세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시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정씨 집안에 시집와 살면서 유일하게 문준경의 버팀목이 되셨던 시아버지였기에, 그의 부재는 문준경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이었다.

“아이고, 이제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나. 아버님이 안 계시면 지가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살아.”

문준경은 가슴을 부여잡고 한없이 울며 하소연을 하였다. 오열하는 문준경은 장례식에 온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했다. 문준경은 너무 많은 오열로 모든 힘이 빠져 버려서 결국 실신했다. 만 17세에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시아버지가 서러움과 외로움을 이해해 주셨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고, 어린 시절 소원이었던 글을 깨우친 것도 시아버지를 통해 이룬 것이었는데, 그 시아버지를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문준경은 시아버지의 상을 3년 동안 치렀다. 그만큼 시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친정아버지 이상이었다. 동네 사람들과 섬 지역에서는 3년 상을 치른 문준경을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로 인정했다. 그러나 남편 정근택은 여전히 둘째 아내와 살면서, 첫째 아내 문준경과 함께 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근택의 큰형 집에서 시아버지를 잃은 문준경을 받아 주었다.

큰시숙 정영범 씨는 문준경에게 늘 고마워했다.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막내며느리 문준경도 함께 살도록 하였다. 문준경은 그곳에 있는 동안 정영범 씨의 아들 태진군을 마음에 품고 양아들처럼 보살펴 주었다. 남편의 무관심과 시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허전함을 이제 양아들 태진에게 쏟는 열정으로 가라앉혔다. 태진이 학업을 다 마칠 때까지 어머니처럼 보살펴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 짝을 만나 결혼할 때에는 자신의 아들을 장가보내듯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결혼 후 태진군은 서울 경일상공 주식회사에 취직되어 아내와 함께 서울에 올라가서 살아야 했다. 그토록 마음을 쏟았던 태진과도 이별을 해야 했다. 너무도 허전했다. 정씨 집안에 정을 두고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는 정씨 집안에 마음 둘 곳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텅빈 마음으로 허전할 때면, 문심이도 보고 싶고 서울로 올라간 태진이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외로움이 다시 문준경에게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 무얼 하며 살아야 하지? 계속 여기 있어야 할까?’

문득문득 앞날에 대한 생각에 잠겼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이 글은 한국교회총연합에서 발행한 <한국교회 선교사 전기 시리즈>의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순교자 문준경"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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