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화순 목사가 추모의 말을 전하고 있다.

“1974년 12월 14일, 오글 목사가 강제 연행되던 날, 우홍선의 아내인 강순희씨가 작은 금반지를 전달했다. 미국에 돌아가서도 인혁당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미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했고, 미국 전역을 돌며 한국의 인권 실태를 알렸다. 여전히 그의 손에는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오명걸(조지 오글) 목사에 대한 추모예배가 24일(화)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 소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지하 이제홀에서 거행됐다.

조지 오글 목사는 1954년 미연합감리교회로부터 한국 인천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투쟁하며 가난과 비움, 헌신의 영성을 보여주었다. 조지 오글 목사는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 지난 11월 15일 91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추모예배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이홍정 목사),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상임이사 김영주 목사), 49통일평화재단, (사)긴급조치사람들, (사)6월항쟁계승사업회, 주권자전국회의, 목민연구소, 민청학련동지회 등이 주관했다.

추모예배 순서자와 참가자 10여명은 그의 영상으로 기록된 그의 활동을 함께 보고, 이후 3인의 추모사를 통해 그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화순 목사(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총무 역임)는 “컨테이너에 살면서 지내는 오명걸 선교사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또 제가 그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가 접시에 삶은 감자 한 알을 줬던 모습을 기억합니다”라고 회상하며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오명걸 선교사이며, 지금도 제가 가난하게 살면서 지내고, 예수처럼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결심을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라고 추모했다. 

안재웅 목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는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오 목사님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하셨으며, 인혁당 가족들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합리적이고 명석하며 사리판단이 정확한 분, 가장 검소한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산업선교, 빈민선교, 학원선교 등을 하시는 분들과 연대하여 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연대하는 과정 중에 함께 했던 오 목사님을 기억합니다”라며 추모사를 나눴다.

교회협(NCCK) 총무 이홍정 목사는 “오명걸 목사님은 냉전과 분단의 족쇄를 찬 채 신음하며 고통받는 한반도에서 소수자와 약자를 위해 일하셨던 분, 가장 어려운 시기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민중의 생명의 발아를 위해 온 몸을 던지셨던 분, 고난의 행군을 하던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라며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대로 오 목사님께서 민중을 사랑하신 것을 기억하며, 고난당하는 이들과 연대하여 새 계명의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선교현장에 참여하고, 그의 길을 따를 것을 다짐합니다”라고 추모사를 했다.

특별히 유족인 Dorthy Ogle 여사께서 보내온 서신을 신승민 목사(교회협 국장)가 대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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