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아멘교회 송영춘 목사의 목회 수상(隨想) (8)

 

‘믿음’의 동의어는 ‘신뢰’다. 그리고 ‘믿음’의 반의어는 ‘신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 ‘신뢰’를 더하거나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신념’으로 만드는 도구로 쓰는 것 같다.

며칠 전 이렇게 정의하고 몇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미국에서는 ‘믿음’을 ‘trust’로 표현한다는 말을 듣고 머쓱해졌다.

‘안다’는 것은 크게 스스로 깨우친 지식과 습득한 지식 두 가지에 의하는 것 같다.

깨우친 지식은 많은 경험들이 누적되어 어느 순간 깨우쳐지는 것과 흔히 ‘도가 통한다’는 것 처럼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 때 알게 되는 지식, 또는 불현듯 원인 없이 알게 되는 지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습득한 지식은 경험을 통해 어느 순간 깨우치는 것도 포함되겠으나 주로 학습을 통한 지식을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안다’는 것은 내가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거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안다’는 그 지식의 폭을 가름할 수 없고, 지식의 질을 가름할 수 없기에 말하는 자신에게만 국한 되는 말이다.

‘내가 안다’는 지식, 정보가 타당성과 정당성을 가지려면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특히 미국에서 생활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마치 나만 깨우친 것으로 알고 으쓱했으니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비로소 깨우쳤다.

그래서 깨우친 지식을 스스로 점검하기 위해서, 또는 깨우치는 지식의 바름을 위해서 학습을 통한 지식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으면 스스로에게 놀랄 때가 있다.

독서가 필요하다 싶어 작심하고 책장에서 책을 골라 읽다 보면 놓치기 싫어 지식으로 남기려고 몇 번씩이고 읽게 되는 내용들이 있다.

‘이 책 참 좋구나, 이 좋은 책을 사놓고 왜 안 읽고 있었지’ 그리고는 새로운 발견인 냥 신이 나서 눈을 부라리고 읽게 된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 나를 무참히 무너뜨리는 현실이 있다.

분명한 내 글씨로 밑 줄까지 그어가며 써 넣어둔 첨언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읽었던 책인데 그 조차도 잊고, 분명 지식으로 삼으려고 읽고 또 읽은 내용조차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젠 스스로를 점검할 방법도 잃어버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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