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차민종의 세상사는 이야기 (2)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다가 기독교인이나 교회에 대한 묘사가 나오면 주목한다. 많은 한국영화 속에 기독교가 나오는데 대부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금도 지나쳤다고 기억하는 영화가 <타워>(2012)였다. 초호화 주상복합빌딩 ‘타워 스카이’에 화재가 나자 많은 사람이 희생을 무릅쓰고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교회 장로라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만 살려고 바동거리다 비참하게 죽었다. 졸부인 듯 집안을 호화롭고 촌스럽게 치장했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집들이를 하는 천박함을 보였다.

최근 개봉한 <1987>에도 기독교가 등장했다. <타워>라는 영화와 비교하면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주었다. 그러나 왠지 석연치 않았다.

이 영화는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부터 6월 항쟁까지를 다뤘다. 경찰은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지만 수많은 용기 있는 이들의 노력으로 사건의 진실은 밝혀졌다. 그리고 고문경찰들은 수감되었다.

영상은 그들이 갇혔던 교도소 안을 비추었다.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감방 안으로 다가갈수록 노랫소리는 커졌고 마침내 노래 부르는 고문경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그는 주먹을 휘두르며 핏발선 눈으로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라는 찬송을 미친 듯이 반복했다. 온 교도소 안을 울릴 정도로 목소리는 컸지만 표정은 전혀 평안해 보이지 않았다.

찬양인지, 화풀이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같이 잡혀온 후배 형사는 위로를 얻기는커녕 서럽게 울고 있었다.

다른 장면을 보자. 수배 중인 민주화 운동가 김정남은 가톨릭 신자였지만 사찰에서 은신을 계속했다. 스토리상 서울의 절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부산의 한 사찰에 숨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 김정남은 이 절에서 신부와 만나 박종철 군 치사사건을 알릴 계획을 논의했다.

밤중에 찬송을 불러대는 고문경찰의 무례함과 달리 사찰을 배경으로 만남을 갖는 이들은 체포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영화 말미에 향린교회가 등장했고 문익환 목사의 외침도 잠깐 나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칼럼니스트들은 “기독교가 과거에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했다”고 평가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기독교에 대해 객관적 시각을 꽤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보여도’는 어찌할 것인가?

밤에도 남의 불편을 아랑곳없이 외쳐댔던 고문경찰은 찬송은 불렀지만 회개는 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였으나 거느린 가족 걱정을 하면서 탈옥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거듭되는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 무조건 “받들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시끄럽고, 이기적이고, 의식이 없고,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무례한 일이라도 밀어붙이는 것이 보수적인 기독교회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땐 그랬었다고, 영화는 현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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