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노충헌의 '문화' '책' 이야기 (6)

어느 비오는 점심시간이었습니다. 회사 근처에서 식사를 같이 했던 젊은이들이 1천만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했다는 영화 <택시운전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참 재미있었다”고, “주연 송강호씨의 생활 연기가 인기의 비결이었다”고, “매표소에서 표를 살 때 사람들이 영화 제목을 헛갈려서 ‘택시기사 주세요’, ‘기사양반 주세요’, 심지어 ‘노란샤쓰의 사나이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면서 담소를 꽃피웠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젊은이들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5.18이 몇 년도에 있었어요?”. “당시 상황이 영화보다 더 끔찍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광주항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아! 그래, 요즘 사람들은 모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전날, 저는 선교사님 두분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다녀왔습니다. 먼저 갔다 오신 한 선교사님이 양림동에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하셨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유럽의 독일로 많이 간다고 합니다. 지금 독일에 가면 한국에서 바빠서 못 보던 분들을 거기서 만날 정도래요. 그런데 종교개혁의 의미가 ‘되돌아봄’에 있다고 한다면 독일보다 우리나라 과거의 기독교역사를 뒤돌아보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양림동에 도착하자마자 소나기가 퍼부어서 호남신학대학교 구내 카페에서 차를 한잔 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잔디밭과 돌계단, 그리고 오래된 고즈넉한 집이 냉큼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참 아름답구나’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광주에 계시는 목사님의 안내로 학교 안에 있는 선교유적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다형 김현승 시비를 지나 선교사님들의 이름을 붙인 산책로를 따라 오르니 바로 ‘선교사 묘역’이었습니다. 유진벨 선교사, 서서평 선교사를 비롯한 22명의 선교사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묘비에 유일하게 꽃이 놓인 무덤이 눈에 들어왔는데 서서평 선교사의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독간호대학 학생들이 서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서 1년 내내 꽃을 가져다 놓는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비석에는 아무 글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거 서서평 선교사님 무덤이 맞나요?”라고 물었더니 목사님께서 “뒤쪽을 보세요”라고 답해주셨습니다. 고개를 빼고 우거진 풀 그늘에 가려진 반대편을 보니 ‘’ELISABETH SHEPPING/ Born Sep 26 1880/ Died Jun 26 1934’라는 글귀가 분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좀 더 올라가니 850여명 한국인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도암교회 전체교인’, ‘오산교회 숫자 미확인’ 라고만 기록된 내용들도 있었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분들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그분들은 어떻게 목숨 대신 신앙을 택할 수 있었을까요?

양림산을 내려오는 길에 선교사님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계단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없는 공간을 찾아서 발을 내디뎠습니다.

양림동에는 광주에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주택이면서, 나병환자들과 생활하기 위해 지었던 우일선 선교사 사택을 비롯한 초창기 선교사들의 집들, 오웬기념각, 광주양림교회, 유진벨선교기념관 등의 선교유적지들이 다수 있습니다.

관광안내도에 따르면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을 때 다 살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서서평 선교사의 투박한 무덤과 순교의 사실을 ‘미확인’으로만 기록한 글귀가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더니 어느덧 비가 그쳤습니다. 함께 점심식사를 했던 젊은이들이 헤어지면서 권해주었습니다.

“<택시운전사> 보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저도 답변했습니다. “어 그래. 당신들도 광주 양림동 꼭 한 번 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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