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노충헌의 '문화' '책' 이야기 (3)

기독교 뮤지컬을 봤습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위클리프(1320~1384)를 추종했던 ‘롤라드’들의 활동과 박해의 슬픈 역사를 극화한 ‘뮤지컬 더 북(The Book)'입니다.

극장에 가기 전에 기사와 자료를 읽어보면서 마음에 걸린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국어 성경을 소지하는 것은 처형을 당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래서 롤라드들은 성경을 한 권씩 암기했으며 광장에 모여서 외운 성경을 전했다’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받아적었다’는 부분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성경을 외웠다면 숨어서 가르쳤어야 하지 않았을까' '야외의 광장은 소음이 적지 않았을 텐데 빨리 말하는 성경 내용을 어떻게 제대로 받아 적었을까’. 뭔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뮤지컬을 보고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롤라드’, ‘롤러드’, ‘위클리프’, ‘영국 종교개혁’ 등의 단어로 논문과 자료를 검색했습니다. 자료의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롤라드’라고 검색어를 입력했는데 논문과 단행본을 합해서 단 35건의 자료 밖에 없었습니다. ‘롤러드’(10건)와 ‘위클리프’(32건)도 기대 이하의 자료량이었습니다.

‘루터’와 ‘칼빈’으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루터’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자료는 4749건, 칼빈은 4516건(칼뱅은 381건)이었습니다.

‘롤라드’와 관련된 논문들을 읽었으나 ‘롤라드’의 행적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한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논문에서 배운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롤라드는 초기에 위클리프가 재직했던 옥스퍼드대학교 학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들은 카톨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화체설을 비판했고 설교를 중시했으며 교황권보다 왕권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화체설을 인정했던 1215년 라테란공의회 등 교회의 공적권위에 도전했습니다.

영국의 왕은 처음에 롤라드의 주장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겼으나 카톨릭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들과 선을 그었습니다.

롤라드들은 한때 하원에 진출해서 1395년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12개조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박해는 심해졌고 롤라드들은 지하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핍박이 지속되면서 롤라드의 대부분은 직조공, 목공, 금속세공인, 제화공, 양복공, 상인 등 서민들로 채워졌습니다.

카톨릭은 롤라드운동 반대법안을 통과시켰고(1406년), 주교회의(1409년)에서 위클리프의 교리를 정죄했고 성경번역과 순회전도를 금지시켰습니다. 콘스탄츠공의회(1415년)는 위클리프를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롤라드들을 가두고 고문했고, 화형하고 처형했습니다.

한 논문에 따르면 1401년 몇몇 롤라드 지도자들이 처형과 화형을 당했습니다. 16세기 초에는 4명을 화형, 4명을 처형했습니다. 1521년 롱랜드 주교 6명이 처형되었습니다. 2세기에 걸쳐서 수많은 롤라드들이 자국어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믿었다는 이유로 붙잡혀서 고문을 받았고 화형대에 올라야 했습니다.

드디어 모든 박해가 끝났을 때 롤라드는 좀 더 발전된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에게 개혁의 주도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오랜 고통으로 인해서 조직력이 크게 저하되었고 지도자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롤라드에 관한 기록 가운데 ‘노리치 이단재판’(1428~1431년)이 있습니다. 텐터튼의 성직자 윌리엄 화이트에게 피신처를 제공하고 성경학교를 운영했던 제화공 토머스 몬, 그리고 그의 아내 하위사 몬, 그의 딸 등이 이단혐의를 받아 처형을 당했습니다.

아비뇽 교황기와 교황권 대분열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지만 당시 카톨릭은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여전히 막강했습니다. 10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았던 자들 역시 모든 박해가 끝났을 때 어떠한 권세나 금전적 보상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거리에만 나서도 온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뜨거웠던 7월의 어느 여름날! 지하 소극장 무대에 오른 뮤지컬 연기자들은 정말 열심히 노래하고 연기했습니다.

배우들이 혼신을 담아 연기하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롤라드가... 될 수 있겠습니까?”

뮤지컬을 보신다면 우리가 물려받은 신앙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되새기면서 깊은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메시지가 너무 강렬하기에 어떤 분들은 부담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진제공]문화행동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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