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기쁨의교회 김대조 목사 ‘신앙 에세이’ (5)

▲ 김대조 목사

나는 노점에서 파는 철판구이(?)를 좋아한다. 천원에 3개를 주는 “붕어빵”이다.

지난겨울, 대학원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 길가에서 붕어빵을 굽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한 쪽에 대고 일부러 걸어가서 한 봉지를 샀다.

마침 시장기도 있었기에 얼른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투박하고 다소 거칠지만 바삭한 몸통의 고소한 맛과 속 안의 달콤한 팥 앙꼬가 입안에 가득 퍼졌다. 바로 이 맛, 천원의 행복! 감사하다.

주님을 따르고자 했던 내 가난한 신학대학원 졸업반 시절, 가진 것이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때 결혼을 했다. 교육전도사 사례비로 받는 27만원(당시에는 괜찮은 사례였다)이 수입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결혼을 해야겠다’, ‘배우자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산을 옮기는 믿음(?)이 아니었나 싶다.

아내가 가지고 있던 얼마간의 돈으로 학교 앞에 작은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방 한 칸을 얻어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순전히 기도의 힘으로 버텨야했던 가난했던 신혼생활이었지만 돌아보면 행복했던 추억이 많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오후, 아내와 같이 찬거리를 사러 동네 소사역 전통시장엘 갔다. 아내와의 첫 장보기 동행이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생선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아내는 “갈치가 맛있다”며 “갈치를 사자”고 했다. 나를 위해 맛있는 갈치구이를 해 주고 싶었나 보다.

아내가 갈치 두어 마리를 집었다. 그리곤 씩씩하게 갈치를 봉지에 넣고는, “아줌마, 이 갈치 얼마예요?”라고 물었다. “OOO원이요!” 생선가게 아주머니의 대답에 너무 놀라 우리 부부는 서로를 쳐다봤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무슨 생선이 금을 박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비싼가! 우리 형편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봉지에 쌌던 생선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아주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어쩌랴?

생선을 놓고 돌아서며 겸연쩍어 서로를 보며 웃고는 말없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우리는 나물과 고구마 그리고 소박한 찬거리를 사서 돌아왔다.

예레미아의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렘 2:2)는 이 말씀을 읽으며 신혼 때의 그 갈치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후에도 계속된 광야와 같은 삶으로 인해 우리 부부에겐 갈치는, 갈치가 아니고 고급진 생선, 금치였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그런 일도 있었지’ 싶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머문다. 아름답게 채색된 젊은 날의 추억 한 페이지, 가난 했어도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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