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물포 문화 아카이브 이사장 고창곤 목사

▲ 고창곤 목사

제물포와 인천 속에 담긴 기독교의 역사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지역 목회자가 있어 화제다.

인천 영락교회를 담임하면서 이사장으로 ‘제물포 문화 아카이브(archive)’를 이끌고 있는 고창곤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 지역은 본래 고구려의 미추홀현(彌趨忽縣, 또는 彌鄒忽縣)이었는데, 백제가 점령한 뒤 매소홀현(買召忽縣)이 되었습니다. 372년(근초고왕 27)부터 475년(문주왕 1)까지 100여 년간 중국의 동진ㆍ송ㆍ북위와 내왕하는 근거지였고, 고려시대에는 서ㆍ남해안 지역과 개성을 잇는 해상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연결되는 중림도(重林道)의 종착역이었으며, 영종도(永宗島)를 연결하는 뱃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이곳은 특히, 삼남(三南)의 조선(漕船)이 한강에 진입하기 전의 정박지였으므로 이곳에 원(院)이 있었습니다. 특히 1876년(고종 13)의 강화도조약과 1882년의 제물포조약이 체결된 뒤 개항장으로서 급속히 변모해 나간 곳이기도 합니다.”

인천의 역사에 대한 고창곤 목사의 설명은 향토 역사학자를 방불케 할 정도다.

“문화를 통해 뿌리를 찾아내고 그 속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고증해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천하면 한국의 최초라는 단어가 연상되곤 합니다. 모든 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인천 제물포는 한국 교회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130여 년전 부활절 주일에 20대 중반의 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부부가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이 땅에 복음화를 위해 온 것입니다.

특히 1902년 12월 22일에는 인천내리교회 성도들을 중심으로 121명이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떠나면서 한인이주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처음 이 땅에 선교사가 들어온 것도 제물포고 한인이주가 시작된 곳도 여기입니다. 현재도 선교사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 바로 인천입니다.“

그가 인천 제물포에 관한 역사적 기록물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 문화 속에 한국교회 기독교 역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문화 속에 들어 있는 초기 기독교 역사를 조명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그는 인천 지역의 교회 목회자와 장로들을 중심으로 ‘제물포 문화 아카이브(archive)’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는 인천 출신들 중 이 땅을 계몽 시킨 인물들의 기록과 유물 등을 찾아 새롭게 조명해 보는 시간을 가진바 있습니다. 방대한 자료들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인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처럼 제물포와 인천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해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에 앞장 설 방침입니다”

‘제물포 문화 아카이브(archive)’의 30여 명 회원들은 인천 제물포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을 발굴, 시청-구청서 순회 전시회를 여는 등의 활동을 통해 인천의 정체성을 찾고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시청과 구청 등을 순회하며 개최하는 전시회는 시민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고창곤 목사는 국내 기독교 역사와 유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문화예술위원장으로 활동할 때에는 당시 문광부 산하 7개 부서에 문화위원들 중 기독교 역사를 담당하는 위원이 없는 것을 알고 관련 부처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12명 중 1명의 기독교 역사 관련 위원을 둘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중앙박물관에 기독교 관련 역사 유물이 없는 것을 보고 당시 관장을 찾아가 기독교 유물관을 만들어 줄 것을 건의 한 바도 있다.

▲ ‘제물포 문화 아카이브(archive)’
 
저작권자 © 뉴스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