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의 행복을 위해 거름과 같은 목회자를 꿈꿔 봅니다”


큰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일부 교인을 불하(?)받아 지교회 형식으로 독립하지 않으면 성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 한국교회의 교회 개척 현실 속에서 그렇게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만 이끌고 교회 개척에 나선 목회자가 있다.

상가건물 5층을 임대, 오는 2월 경기도 고양시 신원동에서 '하나님의 별 하성교회' 개척 예배를 준비 중인 김경중 목사(43)가 그 주인공이다.

김경중 목사 그는 이번 개척 목회로부터 시작되는 하성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삶을 자기 인생의 제4막으로 생각한다. 1막은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며, 2막은 신학교 입학 후부터 27세에 지금의 아내를 만난 때까지이며, 3막은 개척을 결정하게 된 지난해(2015년)까지다.

각 막마다 김 목사의 삶의 규정짓는 단어들이 있다. 1막은 ‘행복’, 2막은 ‘방황’, 3막은 ‘안정’이다.

불신 집안의 5남 3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형을 따라 교회(충남 홍성 금당교회)에 나간 게 계기가 돼 지금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고3때까지 그의 교회생활은 ‘행복’ 그 자체였다. 신앙적 지식보다는 삶으로 부대끼는 교회생활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행복하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행복은 그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깨졌다. 안 그래도 어려운 가정환경인데 원치 않는 신학교에 입학한 탓에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신학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생각에서인지 고3 10월 경 신학교에 가기로 결정을 해버린 것입니다. 가족들의 반대는 말할 것도 없었고요.”

신입생이던 20세 때부터 교육전도사 사역은 기본이고 주중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니느라, 휴학을 세 번이나 하는 등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인해 ‘왜 내가 신학교에 왔는가’에 대한 질문부터 근본적으로 시작해 그 답을 얻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을 ‘방황’했다.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그의 긴 방황은 신학교 3학년 때인 그의 나이 27세 때에서야 끝이 났다.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다.

당시 교사이던 그의 아내는 안정된 직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청혼 내지는 소개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일개 신학생인 그에게 시집을 와 줬고,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그를 건져 준 것이다. 뿐만 아니다. 신혼생활 얼마 후에 김 목사의 부모님도 예수를 믿게 됐다(행 16:31).

“답은 정확이 찾지 못했지만, 집사람을 만나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제가 이 길 곧 목회자의  길을 계속 가길 원하신다’고 하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게 돼, 지금까지 계속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안정’의 연속이었다. 나름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부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말 그대로 안정적인 30대를 보냈다. 맞벌이로 안정된 가정경제 생활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의 나이 40세가 되던 해 갑자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내면에서 생겼고, 이를 놓고 새벽기도를 계속 하던 중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교회개척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됐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가 교회개척을 암시하는, 똑 같은 꿈을 꾼 것이다. 하얀 건물 안에 김 목사가 있는데 건물 밖을 보니 교회 이름은 하나님의 별(星)을 뜻하는 ‘하성교회’였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개척을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5년째 사역 중인 교회(서울 목동 평광교회)에서 할 일도 많았고, 안식년이 되면 유학을 갈 수 있는 길도 있었을 뿐 아니라 솔직히 한국교회의 개척 현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엄두조차 내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개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계속해서 묻던 중, 김 목사는 자신이 풀지 못했던 질문 곧 자신이 왜 신학교에 가게 됐는지에 대한 답을 기도 중에 얻게 돼 개척을 결심했다.

바로 ‘영혼 구원’이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나를 신학교에 보내셨고, 지금까지  부교역자로 사역하게 하셨고, 앞으로는 독자적으로 그 길을 가게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기도하던 중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개척에 대한 두려움이 싹 사라지고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는데 경험해보지 않은 분들은 알 수 없는, 그러한 평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담임 목사님께 개척의 뜻을 밝히고 허락을 받아 개척을 준비했습니다.”

김 목사는 처음에 김포 지역을 생각하고 여러 곳을 찾아 다녔지만 마음에 내키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땅을 보러 다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지난해 7월, 고양시 삼송 쪽이 마음에 떠올라 가서 둘러보니 '과연 여기구나'하고 확신이 왔다. 더구나 이 지역은 그의 나이 20세때부터 42세까지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모든 지역(경기도 고양과 파주, 서울 은평과 양천)의 중심지인지라 그곳이 적임지임을 더욱 확신했다.

그후 본격적으로 개척 준비를 한 끝에 다음달(2월)에 ‘하나님의 별 하성교회’ 창립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김 목사는 43세에 하성교회와 함께 시작되는 그의 인생 제4막을 대표할 키워드로 ‘행복’과 ‘거름’ 두 단어를 제시한다.

자신이 초중고 시절 교회하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실제로도 행복했듯이 하성교회 교인들도 하성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이 ‘행복’ 그자체가 되기를 바라는 하편, 자신은 그 ‘행복’이라는 열매가 잘 맺히도록 돕는 ‘거름’과 같은 존재로 사역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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