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푸라기 위에 누이시는 그리스도(Christ on the Straw)

수년전 교우들과 함께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1970년대 국내에서 방영되었던 TV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Nello)가 충견 파트라슈(Patrasche)와 함께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루벤스의 작품들을 만남으로 우리 자신의 어린 시절과 대면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계 영국 작가 위다(Ouida)의 소설 ‘플랜더스의 개’(A dog of Flanders, 1872)는 19세기 벨기에 북부 안트베르펜 근교의 시골마을 호보켄(Hoboken)을 배경으로 한 아동소설이다.

대부분의 아동문학은 주인공이 시련과 고통을 딛고 결국은 해피엔딩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플랜더스의 개에서는 스토리텔러가 지독한 비극적인 결말로 줄거리를  마감함으로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서가 유럽에서보다 오히려 일본, 한국에서 더 공감을 얻은 독특한 소설이다.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Onze-Lieve-Vrouwekathedraal Antwerpen)에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Die Kreuzabnahme, 1612)가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플랜더스의 개에서 장래 화가를 꿈꾸던 주인공 네로가 평소 비싼 관람료로 볼 수 없었던 것을 크리스마스 이브 한밤중, 달빛에 비쳐진 그림을 보며, 아무도  없는 대성당에서 가난과 고독으로 죽음을 맞으면서도 행복해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 외에도 이 교회에는 ‘십자가를 들어 올림’(Die Kreuzaufrichtung, 1610), ‘그리스도의 부활’(1612) 등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의 대가 루벤스의 작품 네 점이 제작될 당시의 제단화 형식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품들이 제작된 1610년대는 1598년부터 1608년까지의 이탈리아 유학을 마친 루벤스가 안트베르펜에 귀국해 이탈리아에서 섭렵한 고전조각, 르네상스기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의 화풍, 당대의 카라바조와 카라치의 영향 등 남유럽의 미술과 출신지  북유럽의 미술 전통을 융합해 그 자신만이 지닌 전성기 바로크 양식의 전형을 창출해 낼 때 이다.

그는 대개의 천재들이 누리지 못한 부와 명예를 자신의 시대에 경험한 드문 화가로  스페인 섭정 정부의 궁정화가로서 열정과 지성, 신앙과 학문, 자연과 초자연, 실제와 환상을 결합시키는 서사적인 그림들을 통해 에너지와 생명력, 창의력이 충만한  바로크 양식의 절정을 이룬다.

루벤스는 세 폭 제단화(Triptych) ‘십자가를 들어 올림’(1610)에서 좌우 패널에 독립적인 그림을 그리던 지역 전통을 따르지 않고 중앙 패널의 공간을 좌우에 확장하고  시야를 확대하는 이탈리아 방식을 채택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근육질로 이루어진 육체의 힘을 다해 십자가를 들어 올리는 로마병사들과 대속의 사명을 위해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며 신과 영적으로 교류하는 그리스도의 시선이 대조되고 있다.

화면의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대각선 방향으로 놓인 십자가에 눕혀진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방향으로 구부러진 좌측 패널의 여인의 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강한 공감을 나타낸다. (vgl. 로히르 판 데르 베이던)

화면을 가득 메운 군상들의 동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힘과 에너지, 조명의  정점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이탈리아적인 영감에 영향 받은 루벤스의 열정(passion)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 년 후 제작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1612)는 초기에 중시했던 플랑드르 미술의 세부묘사보다도 전체적인 화면의 조화로운 구성과 빛과 색채의 역할을  강조한 작품이다.

불길한 검은 색조의 하늘과 그리스도의 주검을 비추는 강한 빛, 관람자의 시선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향하게 하는 구성과 리듬감, 강렬한 감정적 반향을 일으키는 색조 등 카라바조와 티치아노의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주검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순간을 연극적으로 재구성한 거대한 서사적 작품이다.

그런데 원래 이 교회에 소장되어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안트베르펜 왕립  순수미술관(Koninklijk Museum voor Schone Kunsteen)에 전시되고 있는 루벤스의  또 다른 제단화 ‘지푸라기 위에 누이시는 그리스도’를 방문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지푸라기 위에 누이시는 그리스도’(Christus auf dem Stroh, 1618)는 ‘그리스도의  부활’(Die Auferstehung von Christus, 1612)과 함께 원래 교회 측랑 예배실(Kapelle)의 무덤장식(Epitaphbild)으로 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애도’(Lamentation of Christ) 라고도 부르는 이 세 폭 제단화(Triptych)는 무덤주인 얀 미키엘젠(Jan Michielsen)과 마리아 마에스(Maria Maes)를 기념해 좌우 양측 패널에 그들의 수호성인 마리아와 사도요한의 모습을 표현하였으며 중앙 패널에는 십자가에서 막 내려진 그리스도의 주검을 지푸라기 위에 누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전술한 두 제단화와 달리 ‘지푸라기 위에 누이시는 그리스도’는 작품성과 미술사적  견지에서 볼 때 저명도가 덜 한 작품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그림이야말로 루벤스의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성서해석을 기반으로 우러나온 그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신앙고백이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여긴다.

도상학적 견지에서 이 그림은 그리스도의 장례장면을 담은 '애도'(Lamentation) 보다는 오히려 이사야 53장의 수난의 종으로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비탄의 예수'(Man of Sorrows/Vir Dolorum) 유형에 더 가깝다.

독일어로 안다흐트빌트(Andachtbild, 묵상화)라고 부르는 이런 유형의 그림은 관람자가 그림을 바라보면서 깊은 신앙적 명상에 이르도록 인도해 준다.

당시 무덤장식 제단화를 요청한 주문자와 화가 루벤스 자신은 당대에 아쉬울 것 없는 권력을 지닌 부유층이었다.

중앙 패널의 그리스도의 주검은 사명을 다한 메시아로서 바로크 양식사적으로 또한  화가의 인생사에서 전성기였던 그 시절에 좀 더 위엄 있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바로크 미술이 극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성경의 장면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을 추구하였음을 전제하더라도 우리는 이 그림에서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의 주검이 지푸라기 위에 누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베들레헴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의 몸이 지푸라기 위에 누이셨음은 자명한 일이다.

안식일을 앞둔 성금요일 오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주검을 수습해 절박하게 장사를 지낸 당시의 모든 정황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몸이 급하게 지푸라기 위에 누이실수 밖에 없었으리라.

화가 루벤스는 성육하셔서 세상에 오시자마자 지푸라기 위에 누이셨던 그리스도(Deus incarnatus)께서 이제 대속(代贖)의 사명을 다하고 숨을 거둔 후, 일생을 그렇게 살아오셨듯이, 또 다시 지푸라기 위에 누이시는 순간을 포착하여 표현한 것이다.

‘지푸라기에서 지푸라기까지’ (from the Straw to the Straw)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의 자기 비움(Kenosis)으로서의 성탄의 신비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J. Moltmann)의 은혜와 사랑이 있다.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지푸라기 위에 누이시는 그리스도, 1618년, 세 폭 제단화, 안트베르펜 왕립 순수미술관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지푸라기 위에 누이시는 그리스도, 1618년, 세부, 중앙 패널, 안트베르펜 왕립 순수미술관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를 들어 올림, 1610년, 세 폭 제단화,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612년, 세 폭 제단화,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1521, 내부
▲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1521, 고핸 광장에서 바라본 전경과 루벤스상
▲ 페테르 파울 루벤스, 그리스도의 부활, 1612, 세 폭 제단화,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 플랜더스의 개, TV 애니메이션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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