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계 12월호] 한국구세군 24대 사령관 박종덕 사관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의 구세군(救世軍)은 기독교(개신교)의 한 교파(단)으로서 세계 127개국에 활동 중이며, 1947년 UN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특별협의 지위’를 획득한 국제 NGO다. 107년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한국구세군의 24대 사령관인 박종덕 사관을 <신앙계>12월호가 만났다.


2013년 10월 한국구세군 24대 사령관에 취임한 박종덕 사관은 구세군 사관이 장래희망은 아니었다.

군 제대 후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마침 교회에 어려운 형편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운영됐고 거기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당시 담임사관(목사)의 계속된 권유가 그 시초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 간 곳이 구세군교회 바로 옆이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구세군교회에 다니게 됐고 한동안 교회를 멀리하다 고3 때 회심의 사건이 일어났지요. 그날부터 구세군교회에 등록을 하고 신앙교육, 생활교육 등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성령체험을 하고 구세군에서 줄곧 자란 것입니다.”

“청년이었던 저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접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 남을 도우면서 살겠다고 서원했습니다. 늘 그 서원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구세군 사관이 되라는 권유가 계속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구세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자선냄비다. ‘자선냄비’는 2009년 실시된 자선기금 모금단체 인지도 조사에서 전 국민 99%의 인지도로 1위를 차지했는데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나눔의 대표 브랜드이자 상징물이 되었다.

“구세군은 산업혁명 이후에 영국 런던에서 도시빈민들이 많이 발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수공업에 의존했던 경제구조가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화 되다보니 수많은 실직자들이 쏟아져 나온 겁니다. 심지어 소나 말보다도 대우받지 못하는 도시빈민들의 안타까움을 보고 그들의 편이 돼주고 도와주고 돌보며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 구세군입니다.”

구세군의 태생은 ‘거리’다. 거리에서 빈민들을 위한 교회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항상 전도와 나눔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구세군의 특성이라는 것이 박종덕 사령관의 설명이다.

“1년간 구세군이 모금하는 모금회계연도는 11월 1일부터 다음해 10월 31일까지입니다. 올해도 구세군 자선냄비를 전국 곳곳에서 보실 수 있을 텐데 작년과 비슷하게 연말까지 50억원을 모금할 예정이고, 내년 10월 말까지는 80억원을 더 모금할 예정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구세군 자선냄비의 계절이 찾아왔다. 빨간 자선냄비와 구세군의 종소리는 차가운 겨울날씨를 훈훈하게 바꿔준다.

“저희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우리나라 공적모금의 효시이니만큼 나눔 운동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선냄비의 중점사업의 목표는 액수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정한 모금액을 채우는 것은 두 번째, 세 번째이고 가장 첫 번째 목표는 이 사회에 나눔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이 울려야 그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는 것이고, 그나마라도 모금에 참여하여 서로의 것을 나누며 서로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갖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일을 어떻게 잘할 수 있느냐가 자선냄비를 시작하는 저희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구세군은 사회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 구원이다. 구세군은 정부나 기업과 사회사업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로부터 종교색을 배제해달라는 요구가 종종 들어오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박 사령관의 입장은 단호하다.

“궁극적 복지는 바로 영혼 구원입니다. 따라서 저희가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앞으로 종교색을 배제한 복지사업을 요구하는 추세가 점점 심해질 것입니다. 이럴수록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앞장서서 그늘지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돌봄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빠르게 강퍅해지고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가 만연해지고 는 한국사회에 대한 해법으로 박 사령관은 ‘훈련’을 강조한다.

“먼저 남을 이해(배려)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나눔 훈련이 확산되고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호주로 발령 받아 잠시 사역할 때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초콜릿을 판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실시한 것으로 전교생이 초콜릿을 팔아 그것으로 기금을 만들어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호주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나눔 훈련을 시키더군요. 도전을 받았습니다.

셋째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닌데 우리는 다르면 죄인 취급을 하지요. 이 역시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모두 알아듣게 말해서 되는 게 아니라 훈련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인터뷰 원문은 <신앙계> 12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