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계 8월호] 이라크 대사 역임 후 지난해 목사 된 장기호 강남엘림교회 목사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1971년 외무고시 합격 후 외교관의 길을 걸으며 아일랜드, 캐나다, 이라크 대사 등을 역임하고 은퇴하여 65세가 넘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 지난해 목사 안수를 받은 장기호 강남엘림교회 목사를 <신앙계 8월호>가 만났다.

▲ 인터뷰 중인 장기호 목사

이라크로의 부르심 그리고 목회의 길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외무고시에 수석합격 후 외교관의 길에 들어선 그의 첫 부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아라비안 로렌스>라는 영화를 보고 생긴 사막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자리가 났다는 소식에 단숨에 지원한 때문이다. 

여러 곳의 임지로 돌아다니던 그가 마지막 임지로 택한 곳은 당시 가장 위험하다는 이라크였다. 하지만 8백여일의 이라크 생활은 그의 제2의 인생을 잡아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했다.

36년간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었다가 하늘나라의 대사가 된 장기호 목사는 뒤늦게 예수를 믿었다. 1997년 제네바 WTO 대사를 마치고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하바드 대학에서 연수할 때였다.

학교를 가려면 늘 지나는 곳에 교회가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교회의 모습은 무척 평화스러워 보였다. 그 역시 그 평안을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주일날 아내와 함께 그 교회를 찾았고, 3개월 후에 세례를 받아 정식 교인이 됐다.

그렇게 신앙의 여정을 걷기 시작한 그는 2004년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의 제의로 이라크 대사직을 맡았다.

“처음에는 안 간다고 펄쩍 뛰었지요. 그런데 새벽예배를 드리는데 계속 이라크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데 ‘너의 역사를 만들라’는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결국 이 울림에 마음을 바궈 이라크에 간다고 했죠. 자원한 셈이죠.”

당시 이라크의 치안상황은 매우 안 좋았다. 말 그대로 죽음의 땅이었다. 3위 파병국가였던 한국 대사관도 당연히 테러의 표적이었다.

대사로 부임한 첫날 새벽부터 폭발음에 시달려야 했다. 긴장의 연속인 생활이었기에 그는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고 평화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또한 한국에 돌아가면 이웃을 위해 기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하면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신학공부를 해, 지난해 65세의 나이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해방둥이로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감회가 남다른 장 목사는 ‘이제 통일의 영원히 현실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통일은 곧 복음화의 길입니다. 복음화 되지 않는 통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통일에 대한 비전을 갖고 새로운 삶에 대한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야겠습니다.”

 (인터뷰 기사 전문은 <신앙계 8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