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계 7월호] 성서목회, 예수목회를 외치며 갱신 추구 최건호 목사

기성 총회장을 역임하고 기성교단의 중앙교육원장, 서울신대 겸임교수, CBS방송 관리사장 등을 역임한 충무교회 최건호 원로목사. 성서목회, 예수목회를 외치며 한국교회의 주요한 사역들을 맡으며 교계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로 손꼽히는 그를 <신앙계 7월호>가 만났다.


올해로 목사님께서 사역하신지 48년이 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요?

은퇴 후 필리핀에 갔었습니다. 필리핀국제대학원의 원장직을 수행했지요. 마닐라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인데 그곳 국제대학 캠퍼스 안에 해외선교기념관(5층 건물)을 짓고, 선교와 어학훈련을 도왔습니다.

2005년부터 성결교단본부에서 ‘성광회(은퇴 목회자 모임)’와 본부교회에 참석해 매주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성가대원만 30명이 넘습니다. 모두 목회자들이라 설교는 돌아가면서 합니다. 다들 명설교가예요.(웃음)

목사님 포함 4형제가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믿게 된 이야기 좀 들려주십시오.

대전 선화동이라는 곳에 살았었는데, 바로 저희 집 앞집 장로님 아들이 저랑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일요일만 되면 저보고 함께 교회를 가자는 겁니다. 친구의 인도를 받아서 대전중앙성결교회에 처음으로 다니게 된 것이지요.

형제들은 하나 데리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어머니도 나오시게 되었지요. 그래서 결국 여섯 형제가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권사님이 되셨고요. 이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제가 여덟 남매 중 맏이인데 이중 무려 사형제가 성결교단 목사가 됐습니다. 현제 세 명이 은퇴하고, 한 명이 현직에 있지요.

사실 저는 목사가 된다는 것을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제 젊은 날의 꿈은 법관이었어요. 취미는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아마 법관 아니면 음악가가 되었을 겁니다.

모든 길이 막힌 상황에서 갑자기 저희교회 올드미스 여선생님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이 무슨 연유 때문인지 신학대학에 진학하겠다고 원서를 가지고 왔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만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는 친구가 갑자기 저를 보고 “최건호, 네가 대신 가라! 넌 말도 잘하니 목사 잘 할 거야!”하면서 그 원서를 딱 제게 주는 겁니다. 느닷없이 제가 구레네 시몬이 된 것입니다.

충무교회에는 1974년에 부임, 2005년까지 담임하시고 원로목사가 되셨는데요. 충무교회를 섬기게 된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사역의 시작은 강원도 양구에서였습니다. 양구성결교회에서 약 5년간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시험을 치러 4급 주사로 공무원 생활을 겸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월급을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사역했지요.

그러다 서울 도봉구에 와서 개척교회 사역을 했습니다. 막걸리 마시는 대폿집을 세 얻어 시작했는데 밤이면 밤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누가 기도하러 왔나 나가보면 막걸리 사러온 것이었고 그렇게 그분들을 전도하며, 제가 한 학교의 교목으로 가게 되어 생활이 되면서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충무교회를 담임하시던 김석규 목사님께서 갑자기 브라질로 가게 되신 겁니다. 그래서 급하게 후임 목사를 찾게 되신 것입니다. 정말 노력 많이 했습니다. 충무교회에 부임하면서 제 부족함을 아니까 더 기도하게 됐고 그 이전에 개척교회를 하면서 이루어진 영적훈련들이 약이 됐어요. 또한 교목으로 5년간 사역하며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뛴 것들이 체질화 되어 바쁘고 힘든 생활을 잘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충무교회에서 사역하시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좀 나눠주세요.

서울의 강남시대가 열릴 때 대치동에 좋은 터를 주셔서 교회를 이전했는데 주자 성도가 많은 가운데서도 저 멀리 시내 외곽에서 당시 가난했던 성도들이 교회에 계속 잘 출석한 것입니다.

그때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 건물이 아무리 아름다원도 저는 우리 교회 가장 가난한 성도님과 절대 바꾸지 않을 겁니다. 교회는 천국까지 함께 가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함께 갑시다.” 그랬더니 성도들이 많이 울었어요. 그 때 설교가 기억이 많이 납니다.

개인적으로 아들을 낳은 것이지요. 결혼 후 10년 동안 자식이 없었어요. 모든 방법을 다 써봤지만 안 생겼어요. 무자식한 목사라고 주례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10년 만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후 두 딸도 주셨습니다. 지금은 모두 잘 커서 시집가고 아들도 장가들어 손주들 재롱 보는 재미로 아주 즐겁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 궁금합니다. 성서적 신앙을 기초로 한 ‘예수목회’를 주장하셨는데 예수 목회란 무엇입니까?

예수 중심 목회, 성경 중심 목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프로그램 위주가 아닌 성격적인 본질의 회복을 위해 목회를 해왔습니다.

개혁만 추구하다 보면 본질이 변질될 수 있습니다. 저는 갱신을 추구합니다. 갱신은 본질을 회복하는 것, 영적 갱신 목회입니다.그리고 선교목회를 해왔습니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인 복음선포, 가르침, 병고침의 원리를 따라서 전도, 농어촌교회 지원, 실업인 성경공부 등 교회와 교회 밖의 사역도 활발히 해왔습니다.

그중에도 80년대 신풍운동 16개 이상 교파의 젊은 목회자들이 함께 한 사회참여운동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 지혜가 필요한데 목사님께서 해법을 말해주십시오.

개인구원에 집중되어 있는 관심을 사회구원으로 옮겨가야합니다. 전인적구원, 인간구원, 세상구원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합니다. 교회 밖으로 가서 윤리성, 역사성, 사회성을 아우르는 성숙한 교회가 돼야 합니다.

순수한 성서적 회복과 세상과 인간을 모두 구원하는 교회로 갱신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 순교자들의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며 복음선교, 문화선교, 기독교갱신 운동을 펼쳐나간다면 분명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또한 통일을 위해서 이곳저곳에서 기도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일통일도 기도하는 소수로부터 출발했습니다. 한국교회가 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사명을 가지고 회복, 갱신되면 아시아와 세계복음화에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 기사 전문은 <신앙계 7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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