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독일, 내일은 한국” 동·서독을 분단하였던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직후 허물어진 장벽에 적혔던 글귀다.

그로부터 독일은 금년이 통일을 이룬지 25년이 되는 해이고 우리 민족은 광복 70년과 함께 분단 70년을 맞게 되었다.

통독을 넘어 사회통합을 이루고 유럽의 중심국가로 재도약한 독일사회와 이를 위한 교회의 역할 등 독일의 경험은 여전히 분단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 민족을 섬겨야 할 한국교회의 선교방향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개전국 이라서 지만 한국은 피해국임에도 전후 냉전질서에 의해 동시에 분단되었다. 그로부터 독일은 분단 45년이 되는 1990년 10월 3일, 독일민족의 재통일(Wiedervereinigung)을 이루어내었다.

베를린장벽 붕괴(Fall der Berliner Mauer)를 유발한 구동독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교회의 월요기도회가 통일에 기여한 독일교회의 실제적 역할이었음은 분명하다.

비폭력 평화혁명(Friedliche Revolution)에 의한 독일통일의 기폭제가 된 월요기도회의 저변에는 보다 근원적으로 1945년 종전 후부터 통일을 이룬 1990년까지 양 체제하의 독일민족에게 끊임없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교회에 대한 비전과 소망을 제시한 교회의 역할이 있었다.

종전 직후 연합군에 위해 네 지역으로 분할된 독일은 미·영·불 자유진영과 구소련 공산진영의 지배를 받음으로 정치적 분단이 예견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개신교회(EKD)는 동·서 양 지역을 아우르는 27개 주교회로 구성된  하나의 단일교회를 구성하였다(1945. 08).

독일전역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철저히 파괴됨으로 역사적 책임을 묻기보다는 자신들이  전란의 피해자인 것처럼 여겨지던 이 시기에 동·서 양 지역을 대표하는 독일개신교회는 나치 하에서 교회가 철저히 항거하지 못하고 불의에 침묵한데 대해 회개하는 슈투트가르트 죄책고백(Stuttgarter Schuldbekenntnis, 1945. 10)을 선언함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민족 앞에 역사청산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 독일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교회

독일감리교회(EmK) 역시 1945년 12월, 현재 독일 국민이 겪고 있는 고통은 제 3제국(나치)의 범죄에 대한 결과임을 지적하는 죄책고백을 한다. 냉전이 시작되는 시기에 자신들의 과오를 참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필자는 이러한 교회의 죄책고백이 독일통일의 영적인, 정신적인 기반이 되었다고 여긴다.

1948년과 1949년 두 개의 정부가 출범하고 동독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그리고 서독은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함으로 독일민족은 분단되었다. 하지만 독일개신교회와 독일감리교회 등 교회는 여전히 하나의 조직을 유지하였으며 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도 계속해서 양 지역을 아우르며 번갈아가며 개최하였다.

함부르크(1953), 라이프치히(1954), 동·서 베를린(Gesamt-Berlin, 1951) 그리고 베를린장벽 건설 직전 서베를린(1961) 행사까지 양 지역의 교회가 연합하여 교회의 날을 개최하였다. 1961년 베를린장벽이 세워지고 양 교회의 교류가 현실적으로 봉쇄한 이후 비로소 동·서독 교회조직이 분리되었다.

철의 장막 시기에 양 지역의 교회는 에큐메니칼 교회연합을 통해 하나 됨을 추구하였다. ‘칼을 쳐서 보습으로’(Schwerter zu Pflugscharen, 미 4:1-4) 라는 기치로 1981년부터  동·서 양 교회에서 매년 11월 열흘간 집중적으로 전개된 평화기원운동(Friedensdekade)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며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 교회의 월요기도회도 평화기도회(Friedensgebet)를 기원으로 한다.

1989년 가을 동독지역에서 전개된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이 비폭력 평화혁명으로 관철될 수 있었던 것은 냉전시기 동·서 양교회의 지속적인 평화운동에 기인한다.

▲ 베를린장벽 붕괴 (1989. 11. 09)

베를린 장벽(1961. 08) 이후 동·서독 관계가 급속도로 경직되고 있을 될 때 독일개신교회(EKD)는 튀빙겐 각서(Tübinger Memorandum, 1961. 11)라는 독일민족의 통일을 예비한 교회의 예언자 정신이 담긴 역사적인 문서를 발표한다.

이 문서는 독일정부를 향해 냉전기 동·서 진영 간의 평화정책,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동유럽 인접국과의 화해를 촉진하는 내용을 요지로 하는 독일 개신교회(EKD)의 정책 제안서로 8명의 개신교 인사에 의해 작성되었다.

베를린장벽 건설 직후 핵무장에 의한 군비증강을 반대하고 오더-나이세강-경계(Oder-Neiße-Grenze)를 인정함으로 전후 상실한 영토를 영구히 포기하자는 이 선언문이  발표된 직후 서독사회 내부에서 이 선언문에 대한 극심한 반대여론과 심지어 이념논쟁까지 팽배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정부에 제출된 이 문서는 10년간 연구, 검토된 후 1969년 이후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동방정책(Ostpolitik)의 기초를 이룬다.

1989년 가을,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교회(St. Nikolaikirche Leipzig)를 중심으로 “우리가 (바로) 그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로 시작된 민주화운동이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로 구호가 바뀌면서 통일에 대한 요구로 전환되던 때에 동서 냉전체제의 붕괴라는 국제정세의 지각변동과 절묘하게 결합되는 이 시기의 격변은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분단시절에도 동서독 교회 간에 교류가 있었고 구 동독정부에 의해 주로 동독지역에 위치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유적지들이 보존되는 등 우리보다 통일을 위한 준비에 있어  월등하게 좋은 조건을 지닌 독일에서조차 비스마르크 이후 게르만 민족의 재통일(Wiedervereinigung)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있다.

▲ 독일이 통일되던 날 (1990. 10. 03)

사반세기 전부터 사회통합과정에 들어선 독일에서도 아직도 구 동서독 지역 간 문화적  갈등요소가 상존하는데 우리 민족은 여전히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서 70년을 맞는다.

분단의 고통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겨레의 상처를 매만져주며 깨어있는 자로서 시대의 징후를 분별해 통일을 예비하고 기도해야할 한국교회가 자기 한 몸 제대로 간수를 못하고 오히려 갈등의 주역이 되는 최근의 현실을 대하며 하나님 앞에, 역사 앞에 죄인의 심정을 느낀다.

일찍이 민족교회로 부름 받은 한국교회가 민족이 평화를 이루며 온 겨레가 하나 되게끔  화해자로서, 준비자로서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도 통일의 역사를 허락해 주시기를 독일에서 사역하는 한국인목사로서 간절히 기도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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