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못 볼 줄 알았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마지막 대화일 줄 알았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언성을 높이거나 무례하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한없는 이해심이 담긴 따뜻한 미소로 대응했을 것이다. 헤어지기 전에 한 번 더, 그를 꼭 안았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의 모습을 한 번 더 똑바로 쳐다보고 뇌리에 새겼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그 일이 떠오른 탓이었을까. 웹툰 <어느 날 갑자기 서울은>의 한 장면을 보다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오늘은 내 감정을 건드린 웹툰의 그 장면을 얘기해 보려 한다. 그에 앞서 전체 스토리를 간략히 짚어보자. 서울에 정체불명의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난다. 접촉하는 것만으로 감염되고, 감염자는 흉측한 모습으로 바뀐다. 지방의 어느 고등학교 1학년 3반 학생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이 끔찍한 사태 한복판에 갇힌다. 이들이 서울을 탈출하기 위해 치열한 생존의 노력을 펼치는 가운데 극한의 위험과 위기에 처한 온갖 군상들의 민낯이 드러난다. 때로는 두려움에 질린 비겁함과 갈등과 배신으로, 때로는 용기와 협력과 희생의 모습으로.

오늘의 그 장면은 시즌1이 끝나고 연재되는 외전에 나온다. 해당 에피소드는 화염에 불타는 복도의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 남자의 손. 불에 녹아버린 감염체의 잔해. 괴로운 표정으로 총을 든 한 남자의 컷이 차례로 이어진다. 남자의 이름은 ‘하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죽음을 앞둔 그 순간,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처음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던 대혼란의 현장에서 그가 했던 행동 때문이다.

그는 극도에 공포에 질려 저 혼자 살겠다고 사랑하는 이를 버리고 달아나는 비겁함을 보였다. 그것은 ‘그의 영혼이 식어버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복도 안,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자리에서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녀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그때로

다음 순간 비명에 정신이 번쩍 든 하지만은 자신이 그때 그 현장에 다시 와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을 밀치며 정신없이 달아나는 군중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따라가던 그의 눈에 그녀의 모습이 들어온다. 주저 없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 그는 과감하고 박력 있는 행동으로 그녀를 구해낸다. 안전한 곳에 이르자 그녀를 껴안고 안도의 눈물을 쏟는다.

그녀와 함께 다니며 그는 이전에 만났던 많은 이들을 다시 만난다. 그는 그들을 다 기억하고 어떤 일이 펼쳐질지 다 안다. 당황스러워하는 그들을 반가워하며 필요한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취하여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마침내 모두를 안전한 터미널까지 데려가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안도하며 차에 오르려는 순간, 자신이 도와야 할 것 같은 기억 속 다른 이들이 떠오른다. 뒷사람의 재촉에 떠밀리듯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지만, 이대로 가버리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고민이 된다. 그때 여자 친구가 옆에 앉아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두 사람 사이에 “이제 살았다, 힘든 시간이었어, 그치?” “맞아. 이렇게 서울을 떠나네” 같은 대화가 오간다.

그러다 잠시 아무 대꾸가 없던 그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온다. “근데 오빠. 이제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이게 무슨 소린가 당황하는 지만에게 그녀가 말한다. 오빤 누구보다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고.

▲웹툰 [어느 날 갑자기 서울은] 포스터.
▲웹툰 [어느 날 갑자기 서울은] 포스터.

그때까지 앞을 보고 말하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지민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한다. “날 구하지 못했어도 괜찮아. 그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썼잖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동공이 흔들리는 지만에게 그녀가 말을 이어간다. 그만 가도 괜찮다고. 도와줘야 할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눈물을 쏟으며 허물어지는 지만에게 그녀가 말한다. 자책 그만하라고. 울지 말라고. 그리고 외로워하지 말라고. 늘 함께였다고.

퍼뜩 정신이 든 지만은 자신이 여전히 복도에 있고 감염체를 상대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는 이전과 다르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마지막 순간에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늘 함께였다는 걸. 그리고 퍼엉! 소리와 함께 솟아오르는 불길. 마지막 순간에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사람은 나약한 존재다. 평소에는 자기 수양과 주위의 눈치, 사회적 체면 등으로 대체로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여 주고 산다. 하지만 평소보다 몸이 안 좋거나 조금 강도 높은 두려움 같은 정신적 압박이 밀려오면 그 가면을 뚫고 본색이 드러난다. 거기서 상황이 좀 더 어려워지면 속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아무리 다짐하고 이를 악물어도 어찌할 수 없는 이기심이 나를 어디로 내몰지 알 수 없다. 때로는 내 자신이 나의 가장 큰 적 같고, 어떤 모습이 폭로되고 무슨 허튼짓을 하게 될지 몰라 자신이 무서울 때도 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것을 ‘자기 안으로 굽은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나’라는 인간이 괜찮아 보였던 것은 상황이 무난하고 몸이 건강했기 때문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운이 좋아’ 적당히 괜찮은 모습으로 관리하고 살 수 있었다는 말이 되겠다. ‘하지만’은 평상시 괜찮은 사람이었다.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여자 친구에게는 더더구나 믿음직한 남자였다. 하지만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그는 자기의 바닥을 본다. 그 상황이 그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말도 사실이지만, 그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잔인한 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말은 구체적인 죄를 짓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드러날 악의 가능성, 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서울은>의 ‘하지만’ 편 외전이 내 심금을 울렸던 것은, 무엇보다 나도 ‘하지만’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모양과 내용은 달라도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하거나 반응하는 대신에 다른 선택을 내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지만의 그녀처럼 나의 그 사람도 부족하고 못난 나를 이해해 주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작가는 ‘하지만’의 마지막 순간에 찰나의 환상을 통해 그에게 용서와 위로를 제공한다. 그것은 그녀를 버린 ‘하지만’으로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속죄하는 심정으로 다른 사람을 아무리 도와도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선물이다. 이 에피소드는 그런 용서와 위로가 인간에게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그려내는 동시에, 그것이 인간 노력의 수준을 벗어나 있는 ‘인간 외부로부터 주어져야 할’ 은총이라는 것 또한 선명하게 보여준다.

홍종락 작가, 번역가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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