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의 목회 활동 (9)

▲아펜젤러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임 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 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모습은 모든 종교 가운데 나타나며 이러한 것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모든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것처럼 어떤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아펜젤러는 말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습 즉 모든 종교에서 그렇게 찾고자 하는 구체적인 모습을 비로소 기독교가 모두 충족시키며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말씀은 우리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다가온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처럼 우리도 이를 말씀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체험해야 하며 다른 이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 유대교,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등은 기다리며 애타게 찾고 있지만 구세주가 오셨을 때야 비로소 모든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주장했다.

또한 이렇게 구원을 완성하신 이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고 했다.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 14절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존재이다. 따라서 그분은 이 세상에 육신으로 존재하셨고 구원 사역을 이루기 위해 독생자이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존재로서 구원을 완수하셨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인간의 본성이 갈구하여 모든 종교가 이루고자 하는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4:4-5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 아래서 그 구원의 방법을 찾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을 모두 속량하시고 아들 삼아주심으로써 그 신분과 정체성을 하나님의 아들로 분명히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아펜젤러는 그러면서 그 아들이 되는 것과 구원의 마지막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나는 그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그곳의 문에는 구원이 있으며 그 성벽 위에 찬송이 있고 성전에 가득찬 그의 옷자락과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본다.” 

겉 사람과 속사람

아펜젤러는 겉 사람과 속사람에 대한 설교를 자주 했다.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하려 함이라

아펜젤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한 그 의도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사도 바울은 12제자보다 사도적 정통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늘 그 사도직에 대해서 의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에 고린도후서 4장 6-7절의 말씀을 고백했다.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하려 함이라  

이것은 스스로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예수를 따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보배를 가진 질그릇을 말하는 것이다. 이 보물의 의미는 누가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라는 말씀처럼 천사들이 찬양할 때 이 세상으로 임하신 분이다. 또한 누가복음 1장 78-79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처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를 구원하시고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역의 종결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그 완전함을 보여주셨고 세상을 사랑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찾아오는 죽음의 두려움을 폐지하셨다. 즉 생명과 불멸의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으며 이것이 보물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과도 같은 존재이다. 어떤 사람은 이 그릇처럼 온전하지 못하고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질그릇이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이 보물이면 그 질그릇이 소중한 것처럼 불완전한 우리의 모습 안에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 놀라운 능력과 모습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이를 통해 하나님은 속죄받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음 선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생각하며 질그릇 속에 보물을 담고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아펜젤러는 비록 우리가 수난을 당하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오히려 우리 안에 있는 보물로 인해 그 능력의 탁월함이 나타날 것이며 ‘눈물을 거두게 되고 힘없이 늘어졌던 손을 들어 기도하게 되며 의심을 떨쳐버리고 비파를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이 있음을 명심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글은 한국교회총연합에서 발행한 <한국교회 선교사 전기 시리즈>의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의 생애와 신앙"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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