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흥(興)자는 하나님께서 입(口)으로 하신 명령을 따라서 여러 사람들의 손으로 마주 받들(舁)어 방주(舟, 凡)를 만들어서 대홍수의 심판 후에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는 글자이다.

위의 일어날 흥(興)자를 보면 아래의 두 개의 손과 위의 두 개의 손자는 마두 든다는 여(舁)자와 한 가지 동(同)자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동(同)자의 윗부분이 범(凡)자 인데 갑골문학자들은 범(凡)자가 배 주(舟)자가 같은 글자라고 한다. 그리고 입 구(口)자는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입인 것이다.

위의 갑골문의 모양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흥(興)자는 너무나 달라진 것 같아서 전혀 다른 글씨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위의 구(臼)자는 양 옆의 두 개의 손이며, 아래의 두 손은 지금 이 모양( )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가운데 동( )자는 위로 나온 것을 자르고 입 구(口)를 위로 집어넣으면 동(同)자가 된다.

일어나다, 일으키다는 흥(興)자는 어디에서 일으키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던 것일까? 갑골문학자들은 ‘여러 사람의 손이 공동으로 배를 들고 있는 것을 본 뜬 것이라’고 했다. 일어날 흥(興)자는 부흥(復興)에 쓰이는 글자인다. ‘다시 일어나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것이 대홍수 이후에 그 방주를 만드는 데 참여하여 살아남았던 사람들을 통해서 다시 일어나게 되었던 사건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창세기 9장 1절에서도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사건을 담아 놓은 글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일으키다는 부흥(復興)의 흥(興)자가 배를 받들어 만들고 있는 여러 개의 손으로 이루어졌던 것일까? 고대 중국 문헌에 보면 많은 것을 나타낼 때는 3개를 써서 나타냈다고 한다. 손이 4개나 그려져 있다는 것은 대단히 많은 사람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4개의 손은 노아와 세 아들인 네 명의 손을 대표로 하여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노아의 가족 8명이 그 큰 방주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여 만들었다고 했지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었는가에 대하여는 침묵하기 때문에 그 상황을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노아와 동일 인물인 수메르와 메소포타미아의 대홍수의 기록에 보면 우트나피쉬팀과 아트라하시스에 보면 큰 방주(舟)를 만들 때, 배의 기술자들과 어린 아이들이 역청을 나르는데 참여하였으며, 어른들은 방주를 짓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와서 도왔다고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다.

허신의 「설문해자」에서 “여(舁)는 함께 든다는 뜻이다.” “흥(興)은 일어난다는 뜻이다. 여(舁:마주들 여)와, 동(同)으로 구성되었고 힘을 합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고 힘을 합하여 큰 방주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수메르의 기록에 보면 대홍수의 주인공 지우수드라는 슈르팍의 왕으로 되어 있고, 우트나피쉬팀은 재력가나 지도자로 묘사되고 있다. 노아도 왕이라고는 되어 있지 않으나 아담으로부터 10번째 족장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일어날 흥(興)자의 다른 글자가 이 글자(①)이다. 단지 위의 두 손이 없이 생략되고, 입 구(口)자가 생략된 글자이다. 이 글자와 비슷한 글자가 함께 공(共)자인데, 이 글자의 모양(②)은 네모난 방주(囗)를 받들어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共) 방주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두 손으로 받들어 만들었던 것이 일반적인 배(舟)의 모양과 네모난 방주(囗)로 되어 있는데, 성경적으로 본다면 당연히 네모난 방주(方舟)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성경과 수메르의 맨 처음 기록에는 네모난 배의 방주로 되어져 있지만, 후대에 이 이야기가 전해질 때에는 배에서 구원 받은 것으로도 변형되어 기록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다 가능한 것이다.

갑골문학자들은 흥(興)자는 ‘일어나다(起)’와 ‘살다(生)’는 뜻이라고 한다.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을 재기(再起)한다고 한다. 그리고 생(生)은 생명(生命)의 뜻으로 사용된다. 부흥(復興)의 뜻은 다시 일어난다는 뜻이다. 하박국3장 2절에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復興)하게 하옵소서!”라는 부흥이라는 말의 히브리어가 ‘하야’인데, ‘살아 있다(生)’, ‘되살아나다’, ‘절망이나 죽음으로부터 소생(蘇生)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아의 가족들이 순종하여 만들었던 방주는 대홍수의 진노 중에서 다 멸절을 당하고 새롭게 펼쳐질 세상을 새롭게 일으킬(興) 약속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수메르의 대홍수의 기록에는 ‘모든 인류가 진흙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그 홍수를 피해 배에 들어갔던 사람들을 통하여 이 땅에 인류의 역사가 새롭게 일어났음을(興)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제카리아 시친은 그의 연대기3 「신들의 전쟁 인간들의 전쟁」에서 “구약의 대홍수 이야기는 이렇게 [창세기] 10장의 셈, 함, 야벳을 통한 ‘모든 민족 목록’으로 이어진다. 이 목록은 매우 독특한 문서로 학자들은 처음에 이 문서를 의심했었다. 당시로는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이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부분도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 세기 반에 걸친 고고학적 발견을 거친 뒤 학자들은 결국 그 정확성에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인류가 홍수가 휩쓸고 간 뒤의 진흙과 폐허로부터 문명과 제국의 고원에 오른 것과 관련된 역사적, 지리적, 정치적 정보를 풍부하게 지닌 기록이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였다.

수메르의 기록의 대홍수의 주인공은 방주를 짓는 데 도움을 준 아이들과 시민들을 속이고 자기들만 구원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셔서 끝까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노아에게 오직 의를 전파하게 하셨던 것을 볼 수 있다(벧후 2:5절). 창세기9장 19절에도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고 했다. 이들을 통해서 다시 일어나는(興)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며, 이 사실에 기반 하여 만들어진 글자가 바로 일어날 흥(興)자였던 것이다.

 

▲송태정 (성경적 갑골한자해석연구소 대표/순복음해남교회 담임목사)
▲송태정 (성경적 갑골한자해석연구소 대표/순복음해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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