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1885년 부활절 아침, 미북장로교 언더우드선교사)

지난 달 3월 22일(토), 독일 바덴주교회(Ev. Landeskirche in Baden)와 개신교선교연대(EMS)가 칼스루에(Karlsruhe)에서 개최한 제 10차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 후속 컨퍼런스(Berichte, Begegnungen und Perspektiven nach der 10. Vollversammlung des ÖRK in Busan)에서 팔츠주교회 선교국 총무 마리안나 바그너목사가 개최국인 한국교회에 대한 브리핑을 하면서 인용한 언더우드선교사의 기도문이다.

바그너목사(Pfr.in Marianna Wagner)는 작년 가을 부산방문 시 박물관에서 접한 언더우드선교사의 기도문을 사진에 담아와 소개하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젊은 선교사의 기도의 열매로 선교 한 세기 후, 한국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개최한 데 대해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깨닫는다는 한국교회에 대한 그녀의 깊은 이해와 애정이 담긴 인사말을 전하였다.

▲ 마리안나 바그너목사 (독일 팔츠주교회 선교국 총무)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 후속 컨퍼런스에서 언더우드선교사의 기도문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초석을 놓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선교사의 이야기를 독일교회 모임에서 대하며 한국인 목사로서 그리고 두 분이 세운 학교를 나온 이로서 남다른 감회가 들었다.이어서 그녀는 교파중심의 미국개신교회에 의해 복음이 전래된 한국교회는 (국가교회 전통을 지닌) 독일교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개(個)교회주의로 운영되고 있음을 말하며 교단조직(Kirchenleitung)이 존재하지만 그 의미는 독일교회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개신교회와 카톨릭교회가 동일한 그리스도교회 내의 상이한 신앙고백전통(Konfession)이 아닌 별개의 다른 종교(Religion)로 여겨지고 있음을 소개하며 보수진영의 총회반대 캠페인 등 한국교회가 지닌 전반적인 에큐메니칼 사고와 인식의 편향성에 대해 안타가워 하였다.

▲ 멜리산데 쉬프터(제네바 에큐메니칼신학교육센터)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서 받은 인사을 강연하고 있다.

연이어 부산총회에서 차세대 여성신학자로 주목받은 멜리산데 쉬프터(Dr. Melisande Schifter)의 한국사회와 교회 상황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그녀가 한국으로부터 받은 인상은 정치적으로는 남과 북이 대립되어 있는 가운데 그 구조가 남북한 사회를 규정지으며 이를 치유하고 화해자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 역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한 마디로 ‘갈등’ (Konflikte) 국면에 처해 있는 모습이었다.

쉬프터는 부산총회 당시 총회주제에 관련한 의제를 설정하는 둘째 날 주제회의(Theme Plenary)에서 세계교회가 처한 현 상황을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않은 다원문화적(multicultural) 상황이라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이제까지 수행해온 에큐메니칼 과제들을 전통적인 계몽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현대의 젊은이들과 함께 어떻게 실현해 나갈 수 있는지를 질문함으로 우리 시대의 진지한 고민을 제기한 젊은 신학자이다.

그녀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와 교회는 ‘다름’이 어우러져 더불어 사는 다원문화사회가 아니라 다름이 ‘틀림’으로 간주되며 대립의 각을 세우는 갈등사회의 모습으로 비쳐진 것이다.

특히 총회와 병행하여 열린 세계에큐메니칼신학교육(GETI)에 참여하였던 한 신학생이 총회장소 벡스코 내 VIP 예배실(VIP Worship Room) 표지판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한국교회가 지닌 권위주의를 유머스럽게 풍자할 때 참석자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였는데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였다.

▲ 벤야민 시몬목사 (독일 바덴주교회 선교국) 부산총회에서 채택된 새 선교선언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 변화한 지형 변화 속에서의 선교와 전도”를 강의하고 있다.

당일 컨퍼런스의 프로그램과 내용이 개최국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적 조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부산총회에서 채택된 교회의 일치와 통일성에 관한 교회론 문서 ‘교회- 공동의 비전을 향하여’를 소개한 개신교선교연대(EMS) 울리케 쉬미트-헤세목사(Pfr.in Ulrike Schmidt-Hesse) 그리고 새 선교선언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 변화한 지형 변화 속에서의 선교와 전도”를 강의한 바덴주교회 선교국 벤야민 시몬목사(Pfr. Dr. Benjamin Simon)와 정의로운 평화에 대해 발제한 안네 하이트만목사 등은 한국교회가 지닌 선교역량과 향후 세계교회를 위해 기여할 에큐메니칼 잠재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였다.

오후에는 오전에 발표된 문서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통일성, 선교와 전도, 기후변동과 정의,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순례, 에큐메니칼 신학교육, 사례보고 등 6개 분과로 나뉘어 워크샾이 진행되었다.

필자는 교회의 통일성과 교회들의 공동체(Kirchliche Einheit und Kirchengemeinschaft) 분과에 배정을 받아 바덴주교회 마티아스 크레플린목사(OKR Dr. M. Kreplin)와 함께 개최국 교회를 대표해 논찬자로 참여하였다.

▲ 안네 하이트만목사 (독일 바덴주교회 선교국) 정의로운 평화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이 워크샾 팀의 연사는 부산총회 개회예배 때 세계교회협의회 총무 올라프 트베이트목사와 함께 단상에 성도의 거듭남(세례)을 의미하는 물을 들고 올라갔던 안네 하이트만목사(Pfr.in Anne Heitmann)였다.

그런데 논찬을 하면서 오전 프로그램에서 너무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그랬는지 지난 며칠간 신앙과 직제위원회 문서들을 읽으며 준비한 내용보다도 부산총회를 개최한 한국교회 목사로서 가지는 소회를 더 이야기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한국교회는 부산총회를 통해서 (한국)교회의 통일성(Einheit der Kirche)이 아닌 깊이 파여 있는 (한국)교회의 분열(Kirchenspaltung)을 경험하고 재확인 하였다. 동시에 이번 총회를 통해 한국교회 일부의 연합과 일치운동이 아닌 향후 한국교회 전반의 에큐메니칼 인식과 공감대 그리고 저변의 확대를 위해 에큐메니칼 운동을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에큐메니칼운동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처한 지금의 상황은 콘라드 라이저가 말한 ‘우리는 여전히 처음에 서 있다’(Wir stehen noch am Anfang- Ökumene in einer veränderten Welt, 1994) 바로 그 상황이다. 교회의 하나됨을 향한 친교의 여정(journey of fellowship)은 우리 앞에 말 그대로 긴 여정(long journey)으로 놓여 있다”

▲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 후속 컨퍼런스 전체모습(2)
▲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 후속 컨퍼런스 전체모습(1)

오후 전체토론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마침 2012년 가을, 바덴주교회 한국교회방문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함께 다녀왔던 분이 내게 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그러면서 ‘오늘 다룬 모든 주제들, 정의로운 평화, 기후변동, 교회의 통일성 등은 신앙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주제들이다. 한 가지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들이다. 그런데 재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경험하였던 한국교회의 새벽기도와 같은 기독교 본연의 영성에 대한 문제들을 독일교회가 좀 더 많이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라고 말하였다.

독일(유럽)교회가 지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그리고 독일(유럽)교회와 협력을 하면서 우리가 나누어야 할 한국교회의 은사와 경험이 무엇인지를 지적해준 컨퍼런스의 또 다른 코멘타였다. (물론 이런 주제들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모임은 별도로 열린다)

당일 컨퍼런스가 열린 칼스루에 파울-게르하르트 교회(Paul-Gerhardt-Gemeinde Karlsruhe)는 19세기 바덴 공국(Großherzogtum Baden) 당시 귀족들의 목욕장(Stephanienbad)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 혁명을 통해 독일이 공화정(Republik)이 되었을 때 바덴공국 역시 바이마르공화국의 한 주로 편입된다. 주정부는 귀족들의 사교장과 목욕장으로 사용되던 이 건물을 개신교 예배처로 사용하게끔 중건한다. 그 과정에서 교회명칭을 17세기의 유명한 찬송시인 파울 게르하르트목사의 이름을 따라 명명한다. 이 건물(예배당)이 역사적인 분열과 사회갈등의 기억을 넘어 하모니를 이루는 공간(성전)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그렇게 담은 것이다.

▲ 임재훈목사, 멜리산데 쉬프터와 (제네바 에큐메니칼신학교육센터)

독일(유럽)교회가 지닌 공교회(公敎會)정신과 에큐메니칼 의식은 여전히 우리가 배우고 익혀야 할 부분이다.예를 들어 지역교회(localchurch) 목회자들과 차세대 에큐메니칼 지도력 양성을 위해 각국에서 선발된 ‘세계를 위한 빵’(Brot für die Welt) 장학생들이 후속 컨퍼런스에 참가해 부산총회에서 다룬 내용을 공유함으로 자칫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될 수 있는 에큐메니칼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대중화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분과토의와 전체토의에서 나온 내용을 다시 제네바에 전달하는 논의구조 등은 배울만하고 믿음직스럽게 여겨지는 모습이다.

동시에 우리가 받은 은사와 경험 역시 분명히 나눌 부분이 있음을 현지교회와의 협력사역을 거듭할수록 확신하게 된다.

귀족들의 목욕장이었던 건물을 예배당으로 개조하면서 시민사회의 조화와 하모니를 지향해 찬송시인의 이름으로 교회명칭이 정해진 것처럼 독일교회와 한국교회의 영적인 두 흐름이 합류하여 우리 주님이 원하시고 기도하셨던(요 17:23) 교회의 하나됨(Einheit der Kirche)을 이루기를 바란다.

오랜 역사와 전통, 신학적인 깊이를 지닌 독일(유럽)교회와 상대적으로 신생교회이지만 영적으로 역동감 있는 한국교회와의 만남과 교류는 오늘 우리 시대에 있어 양 교회 모두가 사는 상생(相生)의 길이며 만인을 구원하시고자 하는(딤전 2:4)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한 발현이다.

▲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 후속 컨퍼런스 프로그램
▲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 후속 컨퍼런스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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