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3)

언제부턴가 한국교회는 성장에 대한 조급증 내지는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온갖 방법과 수단을 개발하고 있다.

성장을 목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교회의 크고 작음과 관계없이 모든 목회자들이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다. 위기의식에 비례해서 방법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이러한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게 보일만큼 목회자들은 성장을 위한 방법이라면 눈을 크게 뜬다.

이에 따라 교회성장을 위한 방법이나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개발하고 보급하는 단체나 연구소 등 다양한 기관들이 등장했다. 정체도 모를 단체가 개발한 방법을 아무런 여과장치도 없이 성장에 도움이 되겠다고 하는 주관적인 생각에 의해서 그대로 받아들여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이나 프로그램을 받아들이지 않은 교회가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만큼 많은 교회들이 받아들여서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1990년대 후반기부터가 아닐까 하는 게 주관적인 생각이다. 21세기를 앞두고 한국교회가 뚜렷한 성장둔화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 결과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보급되었다.

그러나 성장을 위한 방법이나 프로그램은 이러한 위기를 느끼기 전에 이미 <교회성장학>이라고 학문을 개발해서 보급할 때부터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성장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고, 그것이 신학적으로 어떤 문제를 동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았다.

극히 일부의 신학자들이 걱정하는 정도로 지나쳤다. 물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럼에도 당시의 분위기로서는 경제적인 성장과 함께 교회도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언제부터인가 온갖 방법과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그것을 목회현장에 대입해서 성장을 꾀하고 있음에도 교회성장이 가시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할 의식이 준비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에 대한 진단을 바르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혹 바른 진단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대안이 막막함을 느끼게 할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위기를 느끼지만 문제가 이어질 뿐이다. 왜냐하면 뭔가 문제인 것은 알겠는데 어디가 문제인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답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방법과 수단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시행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기만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악순환을 동반하고 있다. 즉 실제적으로 교회들이 과거에 비해서 전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름의 방법을 동원해서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운영하고 있다. 교회들마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전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방법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것까지 동원되고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은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찾을 때 슈퍼마켓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그러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신자들의 마음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잠시 동안 그것이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대했던 결과는 주어지지 않았다. 기존의 신자들조차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인가 갈급한 상태에서 방황하고 있다. 동시에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 조급증을 느끼게 한다.

가톨릭교회는 2012년 말 현재 공식적으로 신자수가 500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불교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별히 불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템플 스테이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다 수용을 하지 못해서 걱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는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그 조급증이 채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즉 한국교회는 분명히 노력에 비해서 성장하고 있지 않다. 그렇게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성장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서 단답으로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노력하는 것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상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여기에 문제가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교회성장은 방법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무지했던 시대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으로 관심을 가지게 했고, 그것을 동기로 해서 교회에 나오게 할 수 있었지만 현재에 그러한 필요를 공급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관심은 물질적이거나 문화적 필요를 교회에서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것 때문에 교회를 찾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좀 더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찾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그것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식상한 것을 제시하면서 왜 안 좋아하는지를 묻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사람들은 방법이나 수단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이고 생명의 본질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