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협 언론위 “빈곤 포르노그래피 지양, 제도적 허점 보완해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이홍정) 언론위원회(위원장 임순혜)는 ‘11월의 (주목하는) 시선’으로 ‘막을 수 있는 죽음, 빈곤’을 선정했다. 선정 취지는 다음과 같다.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서울 성북동 한 다세대주택에서 70대 노모 ㄱ씨와 40대 딸 3명이 지난 11월2일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들 모녀의 집 우편함에는 채무 이행 통지서 등 갚아야할 채무가 여러 건 들어있었고, 딸들이 자영업에 실패하면서 생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이들을 찾는 친인척이 없어서 지방자체단체에 무연고자 장례절차를 의뢰했고, 이들은 시민들이 만든 추모위원회의 노제를 받으며, ‘살아서 서럽고 고단했던’ 서울을 떠났다.

서울 봉천동에서는 탈북모자가 지난 7월31일 통장 잔액 0원인 채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두 사람이 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언론이 보도하듯 ‘아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배고픔과 가난을 피해 온 대한민국은 가난과 무기력을 증명하지 않는 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봉천동 모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탈북민이라는 아주 ‘특별한 사회통합’ 대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

2014년 2월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2016년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빈곤에 시달리며 사회적 단절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에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는 국민건강보험료 체납, 단전·단수, 가스 공급 중단 등 29개 지표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돕고 있다.

그러나 성북동 네 모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 29개 지표에 해당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위기 상황이었다. 만일 이들이 공과금을 내지 못해 3개월 이상 체납되면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을 통해 해당 구청에 통보되지만, 네 모녀 가구는 체납 기간이 2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장애아들을 둔 봉천동 엄마 한모씨도 필사적으로 가난과 싸웠다. 탈북하면서 이혼했고, 당장 살아갈 방법이 망막했지만 한모씨는 이혼과 가난을 증명할 수 없었다. 복지 사각지대 29개 지표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이러한 급격한 빈곤화는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로 발굴될 수 없었다. 또 다른 길은 가난을 증명하는 것이다. 29개 지표에 미달하지만, 스스로 가난을 증명한다면, 복지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부양가족이 그 어디엔가 있거나, 조금이라도 차상위계층을 위한 지원수익이 있다면, 복지지원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거나 상징적인 지원금만 받을 수 있다. 그렇게 가난을 증명할 수 없는 이들은 막다른 길로 내몰렸다.

무릎 꿇기를 강요하지 않는 사회

옛 이스라엘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이삭을 남기는 사회복지 전통 즉 ‘고엘’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고엘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방송에 등장하는 후원금 모금 광고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굶주린 아이는 가난을 구구절절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도 자선단체도 송파 세모녀도 봉천동 모자도 성북동 네모녀는 구하지 못했다. 그곳엔 사회적 ‘고엘’도, 행정적 ‘고엘’도 작동하지 않았다. 모금액은 쌓여서 자선단체 창고에 쌓이고, 세금은 지방자치단체 창고에 쌓여갈 뿐이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방송에서는 가난을 증명하고 후원을 구걸해야 하는 비참함이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지고 있다. 빈곤을 포르노그래피를 소비하듯, 일상에서 사회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자신의 가난과 고난을 증명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뜻 없이 그리고 말없이 복종하는 자에게만 자비를 베푼다. 매주 교회와 성당에서도 후원금 모금운동을 한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에게 무릎 꿇기를 강요하는 사회는 차이와 갈등을 극복할 수 없다.

국가에게 위탁된 공적 물리력(Power)은 폭력(Violence)과 다르다. 공적 물리력은 사회적 안전장치이자 등 뒤에서 떠오르는 지는 햇볕처럼 언제나 그곳에 있어야 하는 사회적 배경이다. 행정적 ‘고엘’, 사회적 ‘고엘’ 그리고 종교적 ‘고엘’이 회복되어야 할 시간이다.

교회협 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선임기자, 김덕재 KBS PD, 김주언 열린미디어연구소 상임이사,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길화 MBC PD,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가나다순).

저작권자 © 뉴스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