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아멘교회 송영춘 목사의 목회 수상(隨想) (5)

 

“아이고 우리 교회 부흥하는 거는 보고 죽어야 하는데...”

무거워 고달픈 다리로 교회 차에 오르시면서(누가 수요일 차량 운행 좀 해줬으면 좋으련만…) 하시는 말씀이다.

불만과 아쉬움으로 가득찬 내 머리를 정화시켜주는 한마디였다.

“안녕하세요, 권사님~”하고 건네는 인사말에 “우리 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거예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금년 겨울로 접어들 무렵 ‘우리 권사님들 이번 겨울 무사히 잘 넘기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죽어도 교회 부흥하는 거는 한 번 보고 죽고 싶다’는 소망을 몇 번이고 들었던 것이 새삼 생각난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시집살이보다 더 모진 신앙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꼿꼿이 신앙을 지켰던 권사님이다.

신봉동에 교회가 없던 시절 죽전의 풍덕천까지 몇몇 동기들과 걸어서 주일은 물론 수요, 금요 기도회를 지켰던 신앙인이다.

우리 교회 노권사님들의 전부가 이런 권사님들이다.

‘아이고 그 때 그 시절은 갈 때는 모르겠는데 집으로 돌아 올 때는 신봉동 골짜기 바람이 얼마나 무섭던지 그 때는 참 추웠었는데... 그래도 그 먼 길을 그런 것도 모르고 다녔어.’

권사님이 말씀하는 그 시절 어느 날 신봉동에 기도처가 생기고, 교회가 생겨 그 먼 길 고생은 사라졌을 때, 그리고 이제는 핍박도 이겨 무섭지 않게 되었을 때, 바랄 것 없다 생각 되어졌을 때 한 가지 소망이 생겨났단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부흥하는 것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꼭 우리 교회 부흥하는 것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바 아버지.

이 노권사의 순전한 소망 한 번, 이 종의 기도 한 번 들어주십시오.

아버지가 하신다면 별거 아닐 것 같습니다. 어렵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인생 왔다가 가는 것이고, 보내시면 와서 부르시면 가는 것이 우리네입니다.

그런데 우리 노권사님들의 소망처럼 우리 교회 부흥하고 부르시면 안 되겠습니까?

몸서리쳐지는 핍박도, 골짜기의 살을 에는 마파람도 무섭지 않았던 딸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바라는 바가 교회가 부흥하는 것 한 번 보는 것이랍니다.

스스로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바 아버지 노아에게 무지개로 작정하셨던 것처럼, 그 무지개에 아멘교회 부흥시키고 이 딸들을 부르시겠다고 작정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내년이고 그리고 그 내년이고 그리고 다음 내년이라도 노권사님들이 부흥이라고 생각할 때까지 그 겨울을 무사히 넘기게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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