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세는 경제용어로 단편적인 현상보다는 전체적인 방향이 어떤 곳을 가리키는지를 말할 때 쓰는 용어다.

단기적인 자극이나 변동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되는 장기적인 현상,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트랜드(trend)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트랜드 역시 일시적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언제 그랬냐 싶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유행과는 달리 대세의 흐름과 지향하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얼마 전 분당의 어느 교회에서 설교한 젊은 목회자의 설교를 문제 삼아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세간의 입방아처럼 나도 한 몫 거들었는데, 소동이 너무 심하다 싶어 문제가 된 설교의 전문을 듣게 되었다.

결과 세간이 문제 삼는 부분에서는 전혀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전체 맥락에서 설교자의 의도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었다. 똥 묻힌 그리스도인의 몸에서 나는 똥내를 말하는 것이었고, 그리스도인의 눈에 있는 들보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진정한 선교를 말하는 듯했고, 그리고 내 귀에는 사랑도 말하는 듯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문제를 삼는 자들의 무지가, 세상을 말하는 말씀을 떠난 설교자 자신의 말이, 그리고 전혀 딴 소리하는 그 교회 담임목사의 선동에 가까운 메아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은 선한 삶이어야 한다. 선한 삶은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할 때 나타나는 삶이다. 왜냐하면 선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으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무리 선하게 실려해도 선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선의 척도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설교자는 인간의 노력이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또한 그러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최상의 삶인 것처럼 말했다.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그 설교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세상사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종교들이 하는 말이다. 진리를 모르는 세상의 지식이 하는 말이다.

그러니 세상을 더 잘 아는 사단에게 빌미를 잡힐 수밖에…(그 목사의 설교를 문제 삼은 사람들이 사단이라는 표현이 아님을, 오해 없기를 바란다).

대세는 대세다. 온 세상이 미혹되어 있는 것 같다. 피라니아처럼 먹잇감 하나 발견하면 벌 떼처럼 달려들어 뼈를 추리려는 것 같다. 굶주림 하이에나처럼 충혈된 눈으로 썩은 고기도 마다하지 않는 것 같다. 대세는 대세다..

추세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잠시 왔다가 스쳐 지나가는, 그래서 언제 그랬냐 싶은 나팔 바지였으면 좋겠다. 장발 머리였으면 좋겠다. 트렌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눈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춘몽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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