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 “5·18 폄훼 반복되고 있어”

▲ JTBC 뉴스 화면 캡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이홍정 목사) 언론위원회(위원장 임순혜)는 2019년 2월의 ‘(주목하는) 시선’으로 “5·18 망언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선정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모독하는 사태가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에 개탄하며 △5·18 폄훼 논란이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고 확대되는 것은 ‘피해대상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행법상 집단명예훼손이 인정되기가 까다로워 5·18 망언의 중심에 있는 지만원 씨에 대한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고 △이로 인해 국회에서는 5·18 특별법 개정 움직임이 있고 학계와 시민사회는 ‘홀로코스트 방지법’과 같은 혐오발언 방지법을 제정하자는 요구가 있다는 게 선정 취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선임기자, 김덕재 KBS PD, 김주언 열린미디어연구소 상임이사.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정길화 MBC PD,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다음은 선정취지 전문이다.

(선정 취지)

NCCK 언론위원회 2월의 시선
‘5·18망언 사라지지 않는 이유’

한국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는 2월의 ‘주목할 시선’으로 ‘5.18망언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선정했다.

‘5월 광주’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끌어낸 원동력이다. 1987년 전두환 군부독재를 몰아낸 6월시민항쟁의 원천이기도 하다. 2년 전 광화문광장을 벌겋게 물들였던 촛불의 물결에도 5월 광주 영령들의 혼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사실을 왜곡하고 영령들을 모독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민의의 전당으로 불리는 국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주도했다니 믿기 어렵다.

자유한국당의 ‘망언 3인방’으로 일컬어지는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의 망발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5.18 광주폭동”(이종명)이나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김순례)과 같은 폭언은 자유한국당이 전두환 집단의 후예임을 증명해준다. ‘5.18은 폭도들의 난동’이라는 전두환의 주장이 한국당의 DNA에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5.18폄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종편이나 일베 등 인터넷에는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글이 떠돌았다. 그 중심에는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씨가 있다. 이번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흔히 ‘민의의 전당’으로 일컬어지는 국회에서 지씨의 날조된 주장을 퍼뜨리고 의원들이 지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광주의 영령과 유족, 유공자들을 모욕하는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는 점에서 온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

지만원씨는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 참석해 “이른바 ‘광주의 영웅’들은 북한군에 부화뇌동한 부나비, 무개념 아이들과 무고한 피해자들”이라고 망언을 내뱉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터져 나왔던 지씨의 망언은 여러 경로로 퍼져나갔다. 급기야 국회에서 북한군 개입설이 거론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왜곡된 주장을 퍼 나르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지만원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5.18민중항쟁구속자회와 오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더불어민주당 설훈 민병두 의원,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 정의당 등은 지씨의 이번 발언을 문제 삼아 검찰에 고소·고발장을 냈다. 서울남부지검은 사건을 형사2부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지씨에게 처벌이 내려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씨의 행위가 명예훼손으로 인정될지에 대해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만원씨가 5.18왜곡으로 민형사상 재판을 벌였거나 진행 중인 재판은 적어도 6건에 달한다. 지씨는 2002년 일간지에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광고를 실어 5.18재단 이사장 등으로부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지씨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이듬해 1심 재판부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풀려났다. 지씨는 또 ‘김대중 전대통령이 김일성과 짜고 북한 특수군을 광주로 보냈다’는 등의 허위주장을 펼친 혐의로 2013년에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2012년 12월에는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2011년 1월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기소된 지씨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씨가 5.18민주화운동을 왜곡·비방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구체적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 “5.18민주화운동은 법적 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상태로 지씨 게시글을 통해 5.18관련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면죄부를 줬다. 이듬해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됐다.

지씨의 왜곡은 2012년 12월 한차례의 무죄 확정 판결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은 뒤 지씨는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식으로 왜곡 활동을 확대해나가기 시작했다. 법원으로부터 일종의 ‘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씨가 이른바 ‘광수’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도 대법원 판결 이후다. 지씨는 5.18항쟁 당시 사진 속 시민군과 유족을 ‘광주에 내려온 북한 특수군’을 줄여서 ‘광수’라 부른다. 지씨가 관여하는 인터넷 매체뿐 아니라,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와 일부 종합편성 방송까지 지씨의 주장을 그대로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법원이 제때 단죄하지 않으면서 같은 내용의 ‘망언’이 하루도 끊이지 않는다. 명예훼손 사건 형사재판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망언 피해자는 계속 늘고 있는 것이다.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까지 법원판단의 장기화를 틈타 망언을 퍼뜨리고 있는 셈이다. 여러 차례 정부조사와 법원판결로 거짓 날조 왜곡임이 명백히 드러난 망언의 심각성을 법원이 보통의 명예훼손 사건처럼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씨에 의해 ‘광수’로 지목당한 광주시민과 유족은 지씨를 상대로 네 번째 형사재판을 진행 중이다. 노령의 광주시민은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을 오가며 2년10개월째 진행되는 재판에 참여한다. 이 재판은 2016년 4월21일 첫 번째 공소장이 접수된 뒤 2년 10개월째 진행 중이다. 3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 1심재판도 끝나지 않았다. 지난 1년여 동안 재판을 맡아온 세 번째 법관이 정기인사로 교체돼 ‘네 번째 법관’은 처음부터 다시 심리한다.

지씨가 “광주 북한특수군(광수)”이라고 날조한 광주시민이 2015년부터 차례로 제기한 3건의 고소사건이 하나의 재판으로 병합되면서 재판진행이 더뎌졌다. 지난해 1월23일 마지막 사건이 병합된 이후 재판부는 올해 1월까지 한 해 동안 5차례 재판을 하는 데 그쳤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경진판사는 두달 뒤인 3월26일 다음 공판을 열겠다고 했지만, 자신은 정기인사에서 부산지법으로 옮겼다. 새로운 법관이 지씨 사건 1심을 맡으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공판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김 판사는 지난해 6월 재판에서 ‘북한 특수군을 지휘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로 지목당한 5.18당시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씨와 ‘184번 광수’로 지목당한 시민군 곽희성씨 등이 지씨 변호사와 언쟁을 하자 일방적으로 증인신문을 중단하고 재판을 끝냈다. 피해자들은 광주에서 서울까지 왕복 4~5시간이 걸리는 길을 오가야 했다. 검찰은 “지만원씨 사건은 날조가 명백한데다 이미 법원 거짓이라고 판단했던 사안”으로 “재판을 오래 끄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씨는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지씨에게 적용된 혐의인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구체적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한다. 다만 피해대상이 특정돼야 한다.

지씨는 2009년 11월 인터넷 홈페이지에 “김대중 전대통령이 김일성과 짜고 북한 특수군을 광주로 보내 시민들이 학살당했다” 등의 내용이 담긴 글을 올렸다. 피해자가 김 전 대통령으로 특정됐다. 법원은 “공공의 이익은 공정한 의견이나 비판, 진실성이 증명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해당한다”라며 유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2008년 “5.18 당시 북한 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됐다”라는 글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피해자를 5.18 사망자, 행방불명자, 부상자 등으로 특정했으나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게시물에 의한 비난이 5.18 민주유공자들 개개인에 대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5.18 사망자, 행방불명자, 부상자) 구성원의 수가 적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지씨의 국회 발언도 비슷한 상황이란 의견이 나온다. 피해자범위가 애매하면 무죄가 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사실관계에 비춰 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한 것인지 모호한 상황이면 처벌이 힘들다는 설명이다. 민사소송도 명예훼손 대상자가 특정돼야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한다.

강용석 전의원은 2010년 식사 자리에서 “아나운서는 모든 걸 다 줘야 한다”는 발언으로 민형사 소송을 당했으나 법원은 모두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았다.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맡았던 1심 재판부는 “강의원 발언이 최소 700~800명인 여자아나운서 개개인을 특정했다라고 보기에는 수가 너무 많다”며 “현직 국회의원의 발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비상식적인 발언이더라도 이를 개개인에 대한 모욕으로 볼 것인지, 도덕적인 비판으로 해결할 문제인지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집단명예훼손은 인정되기 까다로워 처벌하기 힘들다. 지씨가 이러한 점을 철저히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5.18을 왜곡하는 망언을 처벌하는 규정을 넣어 5.18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박광온의원은 지난해 8월 5.18을 왜곡·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도 5.18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자유한국당은 반대의견을 명확히 했다.

이와는 별도로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5.18을 폄훼·왜곡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방송과 인터넷에서 5.18을 비하·왜곡해도 형사 처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 일부 국가의 ‘홀로코스트 방지법’과 같은 혐오발언 방지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유럽 일부 국가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나치범죄를 옹호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독일은 1985년 형법 제130조 3항에 ‘홀로코스트 부인’을 금지하는 규정을 담았다. 프랑스도 1990년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나치학살 부인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홀로코스트 부인행위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할 경우 희생자와 가족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소수자를 상대로 한 범죄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러한 법률을 시행한다. 홀로코스트가 반인륜 범죄라는 점도 나치범죄 옹호를 단호히 처벌하는 이유이다. 특히 독일은 형법 86조에 나치를 찬양하거나 나치식 거수경례 및 복장을 착용하는 것마저 처벌하는 조항을 법으로 규정해 놓았다. 나치상징 깃발과 슬로건을 사용할 경우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엄벌에 처한다. 

이러한 법안들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판례도 이미 나와 있다. 박유하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판결이 그것이다. 법원은 “타인의 인격을 훼손하는 것은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5.18 망언 방지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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