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손정도목사 학술 세미나>’

▲ 16일 정동제일교회에서의 세미나 모습

기독교대한감리회가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감리교 목사이자 상해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과 교통부 총장을 지내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 핵심 산파역을 한 손정도 목사를 재조명했다.

16일 오후 정동제일교회 문화재예배당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손정도목사 학술 세미나>’가 그것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명화 박사(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독립운동가 손정도’를, 성백걸 박사(백석대학교)가 ‘손정도 목사의 애국신앙운동’을 주제로 발제했고, 김승태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와 서영석 박사(협성대학교)가 논찬했다.

세미나를 주최한 ‘감리회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 위원장 이병우 감독은 “3.1운동에 이어 임시정부 수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신 손정도 목사 학술 세미나를 통해서 감리교회가 나라와 민족, 그리고 사회 앞에서 빛과 소금으로써 감리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개회사를 했다.

(사)손정도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전용재 감독은 “손정도 애국지사를 기리는 기념사업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태동기의 바른 역사를 재조명 하고자 남,북 학술대회, KBS TV 다큐멘터리 제작, 생가복원 및 기념관 건립, 손정도 정신 연구학당 설립, 해석 손정도 장학회 설립을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다”면서 “그 시작이 바로 오늘 학술세미나”라고 인사말 했다.

손정도(1872-1931년) 목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과 교통부 총장으로 활동했다. 아들은 훗날 대한민국 해군 창군 주역이자 해군 제독으로 지낸 손원일이다. 윤치호일가와는 사돈으로, 윤치호의 이복 동생 윤치창이 그의 맏사위였다.

김일성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 손정도 목사를 '국부' '생명의 은인' '친아버지' 등으로 지칭했다. 김일성은 손 목사 자녀들과 자주 어울렸으며 차남 손원태씨와는 친구였다.

김일성은 죽을 때 손정도 목사를 찾아 의지하라는 부친 김형직의 유언에 따라 손목사를 찾아 많은 도움을 받았고, 청년시절 중국 지린에서 7개월간 감옥에 있을 때 손목사가 옥바라지를 하고 일본 헌병에 이첩되기 전 큰돈을 써서 석방시키기도 했다.

첫 발제자인 이명화 박사는 “해석(손정도 목사)은 선교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목사로서 기독교에 헌신했지만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과 피를 아끼지 않았다”면서 “해석에게 목회자로서의 신앙운동과 민족독립운동은 결코 분리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박사는 ‘이상촌 건설’이라는 손 목사의 만주에서의 활동에 대해 “현실을 뛰어넘는다는 의미의 용어와는 달리 해석의 이상촌건설운동은 국민안정과 재정원을 확보코자 했던 현실적인 대책으로, 궁극적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재정적, 군사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던 독립운동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 발제자 성백걸 박사에 의하면, 손정도 목사는 민족의 살길이 오직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자유하는 독립에 있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동양평화의 관건이 조선의 독립에 있다고 동아시아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며, 여기에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이 직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성 박사는 “그래서 손정도는 자유독립과 국민이 가져야 할 민족주의를 부르짖고, 신앙자유의 용기로 화평한 복음을 전하며 진리와 정의로 선한 싸움을 싸워보리란 결심으로 하나님께 약속하고 투신했다”면서 “손 목사는 독립운동가이고 실천가였다”고 평가했다.

논찬에 나선 서영석 교수(협성대)는 “남북의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이 때, 손정도의 정신으로 화해와 상생의 기틀을 마련한다면 민족 화합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고, 또한 양극화와 반목이 혼재한 이 사회에도 통합과 상생의 메시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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