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노충헌의 '문화' '책' 이야기 (13)

성탄절은 거리를 장식한 성탄트리에서 시작되는 듯합니다.

여름철 햇볕을 가릴 용도로 사용했던 원두막으로 만든 재활용 트리부터, 백화점 건물 전부를 뒤덮은 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화려한 불빛 속에 서 있는 트리들이 성탄을 알려줍니다.

지자체들도 성탄절을 맞아 지역을 홍보하기 위해 트리를 세우는데, 해마다 조금씩 높아집니다.

웬만한 곳에는 10m 이상의 트리를 만들었고, 부산광복로나 서울광장은 20m가 넘는 성탄트리를 자랑합니다.

서울의 한 지자체는 트리 꼭대기에 빗살무늬토기를 올려놨다고 하고, 스리랑카 콜롬보는 60만개 전구에 빛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73m 트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탄 트리는 처음부터 휘황찬란했던 것은 아니며 그 시작은 오히려 이교적 풍습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성탄 트리의 시초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7세기 잉글랜드 선교사 성 보니파스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중부 유럽을 여행하다가 어린 소년을 오크나무에 묶고 제물로 바치려는 무리들을 보았습니다. 보니파스는 악행을 만류했으나 사람들이 듣지 않자 화가 나서 오크나무를 주먹으로 내리쳤습니다. 놀랍게도 나무는 쓰러졌고 나무 뒤에 작은 전나무가 나타났습니다.

보니파스는 전나무를 가리키면서 상록수는 생명을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프랑스와 독일 전역에서 전나무를 천정에 매달았던 것이 성탄 트리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8세기 독일 선교사 오딘이, 신성하다고 여긴 떡갈나무에 사람을 바치는 야만족을 교화하기 위해 떡갈나무 대신 전나무를 보여주면서 “전나무를 가지고 집에 가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는 대안적 문화를 제시한 데서 성탄트리가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성탄 트리의 시초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루터는 성탄절 전날 저녁 숲속을 산책했습니다. 그런데 어두운 숲에서 환하게 빛나는 곳을 발견했고, 거기서 눈 덮인 전나무를 달빛이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루터는 “인간은 저 전나무와 같다. 한 개인은 어둠 속의 초라한 나무와도 같지만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주변에 아름다운 빛을 비추일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루터는 어린 전나무를 집으로 가져와서 눈을 상징하는 솜과 빛을 상징하는 별을 달았습니다.

1605년 써진 알자스 지방 여행기에 따르면 스트라스부르에 성탄이면 색종이로 만든 장미꽃과 사과나 설탕으로 장식한 나무를 세우는 풍습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 성탄 트리는 12월 25일부터 1월 6일까지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성탄 트리는 전나무를 비롯한 상록수였고, 트리에 장식된 음식물이나 등불은 풍요를 기원하고 악마를 막아낸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트리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면 성탄 트리는 예수님의 생명력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징인들 예수님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어떤 상징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올 성탄을 앞두고 생명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트리 하나 정성껏 장식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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