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노충헌의 '문화' '책' 이야기 (11)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1990년대 말, 고형원 님이 작곡한 ‘부흥’이라는 찬양을 들었을 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까지 불렀던 그 어떤 찬양과도 차별화되는 웅장한 멜로디에 이 사회와 북한, 그리고 열방이라는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저는 온누리교회 '경배와 찬양' 모임에 참여하곤 했습니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외국의 최신 찬양을 전문 찬양팀의 인도에 따라 수백 명의 청중과 함께 몇 시간이고 부르는 일은 참으로 가슴 벅찼습니다.

경배와 찬양이 예배찬양이라는 새 길을 내기 전에 한국교회에 충격을 주었던 사람은 최덕신  님이라는 걸출한 작곡가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 그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조성을 사용해서 ‘그 이름’, ‘나’와 같은 매혹적인 노래를 선보였습니다.

한국교회는 교회에서 찬송가, 기도원에서 복음성가를 부른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부흥이 화두가 되면서 찬양의 이분법을 깨고 교회 안으로 복음성가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특히 부흥사경회 때는 기도원에서 들었던 애절한 회개 찬양과 점점 빨라지는 북소리에 맞쳐 힘차게 박수를 치게 되는 4박자짜리 리듬이 어김없이 분위기를 좌우했습니다.

대학생선교단체들이 영향력을 확장하면서 최용덕 선생이 작곡한 부드럽고 단순한 멜로디의 찬양이 감동을 주었고, 김석균 전용대 김민식 최미 선생 등의 우리 정서에 맞는 끈끈한 찬양이 중장년층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흥’을 비롯한 고형원 님의 곡들은 이전의 곡들과는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사회는 여전히 혼란했고 교회는 서서히 쇠퇴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고형원 님과 부흥한국의 곡들은 찬양을 부르는 이들에게 민족복음화라는 비전을 제시했고 열방을 향한 선교의 사명을 잊지 않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 부흥한국이 사역을 시작한 지 올해 20주년을 맞아서 지난 10월 20일과 21일 영락교회에서 기념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콘서트에서는 박종호 송정미 소울싱어즈 등이 나와 부흥찬양팀과 함께 ‘부흥’, ‘땅끝에서’,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물이 바다 덮음같이’, ‘비전’ 등 주옥같은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우리 세대가 20년동안 부흥한국의 노래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를 때마다 감격이 여전한 찬양들을 알고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크게 히트했던 영화 <부산행>은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천신만고 끝에 부산에 도착한 어린 소녀 수안(김수안 분)과 임산부 성경(정유미 분)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들은 터널을 지나야 했고 터널 안은 어둠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터널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런데 터널 건너편에서는 군인들이 거총을 한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지칠 대로 지친 채 비틀거리면서 다가오는 검은 물체 두 개가 좀비라고 판단했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는 순간, 군인들의 귀에는 작은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수안이 자신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아버지와 자주 불렀던 ‘알로하 오에’를 노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석별의 정을 아름답게 그린 하와이 민요소리에 군인들은 총을 내던지고 두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어두운 터널 속으로 급히 뛰어들었습니다.

곡조에 가사를 담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찬양을 부를 때 저는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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