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노충헌의 '문화' '책' 이야기 (5)

최근 신문을 보다가 모 교회 담임목사청빙 광고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출 요구서류 가운데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참 이례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제출 서류 항목도 살펴보았습니다.

이 교회는 담임목사 지원자에게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포함해서 20가지의 서류를 요구했습니다.

목사자필이력서, 목회계획서(목회철학, 선교철학, 비전, 목회동기), 자기소개서,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대학 졸업증명서와 학위증명서, 신대원 졸업증명서와 학위증명서, 노회소속증명서, 목사안수증명서, 최근 3개월 이내 설교 2회분 CD 또는 USB, 건강진단서, 범죄사실증명서 등이었습니다.

담임목사 지원자의 부인이 작성해야 할 서류도 3가지가 포함되었습니다. 사모자필이력서(학력 신앙력 경력), 사모소개서(가족소개 성장배경 신앙관 등), 사모건강진단서였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이 교회는 1차 서류 심사 통과자를 대상으로 2차 면접을 할 예정입니다. 최종 심사자 그룹에 들면 추가 서류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2차 면접 때는 사모도 동석해야 하고요.

담임목사를 청빙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아마 이 정도 절차는 밟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좀 많지 않나요? 요사이 이 교회 외에 호적등본과 제적등본을 내라고 요구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이 서류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혼인관계증명서는 현재 배우자와의 사실관계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 개인의 혼인이나 이혼, 입양 등 인적 사항뿐 아니라 동일한 호적에 오른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인적사항이 드러납니다.

범죄사실증명서는 범죄경력증명서와 범죄경력회보서로 나뉘는데 목사 지원자에게 해당되는 것은 범죄경력증명서로 보입니다. 범죄경력증명서는 개인범죄경력 확인, 공직후보자, 국제결혼, 농업협동조합법, 외국 입국 체류의 5가지 경우에 발급 요청을 합니다. 물론 일반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서 발급을 신청할 때 “나는 목사이고 교회제출용으로 범죄사실증명서가 필요해서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호적등본은 현재의 호주 밑에 누가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적등본은 이미 말소되어 어쩌면 숨기고픈 과거의 흔적까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권침해 논란이 있습니다.

목사들은 이 같은 서류를 관계기관에서 발급받으면서 자신이 범죄자가 아니고 부도덕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떳떳하면 되겠지요! 그러나 이런 서류를 떼기 위해서 관공서, 경찰서, 병원을 다니면서 머리를 숙인 뒤 서류 다발을 우편으로 발송하는 목회자에게서 직장인의 모습을 느낀다면 지나친 감상일까요?

교회들은 광고에 이런 단서 조항도 붙였습니다. “개별 상담, 방문 및 전화 문의는 일체 사절합니다”, “제출된 서류의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에는 제외되며 청빙이 결정된 이후라도 당연 무효됩니다”.

담임목사 후보들은 서류들을 보내고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교회의 분위기를 알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답답한 마음 가운데 기도하겠지요? 때로는 청빙절차가 1년 이상 진행되기도 하니 현재의 목양에 최선을 다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21세기의 첫해였던 2000년 담임목사 청빙광고에서 요구하는 서류 항목은 적게는 4개, 많게는 8개쯤이었습니다. 대개 이력서와 설교 내용이었고 호적등본을 요구하는 교회가 간혹 있었습니다. 광고의 크기도 가로 5.7cm 세로 9.6cm가 주류였습니다.

요새는 가로 8.7cm 세로 16.5cm가 주종을 이루고, 가로 36cm 세로 17cm 짜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광고 디자인도 날로 컬러풀해지고 있습니다.

담임목사 청빙 광고에서 요구하는 1차 서류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광고의 크기도 훨씬 커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교회는 평안하십니까?
저작권자 © 뉴스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