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노충헌의 '문화' '책' 이야기 (2)

영화 <스파이더맨:홈커밍>이 개봉 열흘 만에 50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스파이더맨의 귀환을 오매불망했던 저는 개봉 이틀째 되는 날 극장을 찾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대박을 칠 정도로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쾌하고 빠르게 장면 전환을 했기에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스파이더맨:홈커밍>은 전편의 중심 줄거리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10대 고교생인 피터 벤저민 파커가 초능력을 사용해서 악당들을 무찌른다는 내용 말입니다.

스파이더맨은 미국의 마블코믹스사가 1962년 탄생시킨 영웅입니다.

마블코믹스사가 만들어낸 영웅들은 스파이더맨 외에 캡틴 아메리카, 토르, 엑스맨, 헐크, 아이언맨 등이 있습니다. 저는 그 중 스파이더맨을 가장 좋아했는데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파이더맨보다 더 강한 능력을 가진 영웅들도 있고 더 오랜 연륜을 지닌 채 지금껏 지구를 지켜줬던 캐릭터들도 있습니다.

특히 마블코믹스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DC캐릭터사에는 1938년생 슈퍼맨, 1940년생 배트맨, 1941년생 원더우먼이 존재합니다. 물론 외계인인 슈퍼맨과 반신반인인 원더우먼의 정확한 출생연도는 알 수 없습니다.

DC캐릭터사 빅3 캐릭터 가운데 유일한 인간인 배트맨도 참 좋습니다만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받은 그의 집에 저 같은 범인이 방문하기는 요원할 것 같습니다. 다만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지 않고 오히려 나누고 희생하는 그를 존경합니다. 

이런 영웅들과 달리 스파이더맨은 서민형입니다. 그는 10대 시절을 삼촌과 숙모 손에서 지냅니다. 삼촌 벤 마저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한 뒤에는 메이 숙모와 단 둘이 살아갑니다.

어느 날 방사능에 피폭된 거미에 물린 뒤 초능력을 갖게 됐지만 집안 형편을 돕는 소년 가장 역할을 하기엔 여러모로 모자랍니다. 그는 방과 후면 악당들을 잡으러 이 빌딩 저 빌딩을 날아다니면서 사춘기의 고민을 해소합니다.

학교성적은 형편없고 사고도 많이 칩니다. 분명 넉넉지 않은 살림일 텐데 대체 얼마짜리인지 궁금한 백팩을 여러 개 잃어버립니다.

물론 그는 15톤의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근력과 총알을 피하는 반사 신경, 파리도 미끄러질 것 같은 매끈한 초고층 빌딩도 재빨리 오르는 대담함을 지녔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아이언맨이 선사한 웹슈터를 통해서 2시간이 지나면 녹는 거미줄을 발사하지만 원래 그는 1주일간 녹지 않는 생체거미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은 수다쟁이고 매번 영화 때마다 바뀌는 여자 친구 앞에서 수줍음을 타는 청소년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숨기고, 숙모 앞에서는 늘 밝은 표정을 보일 정도로 속이 깊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며 다른 때보다 더 뿌듯함을 느꼈고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는 늘 양쪽 손목이 근질근질했습니다. 방사능에 피폭된 거미를 찾는 일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스파이더맨:홈커밍>을 보고 제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영화 주인공과 동류의식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얼추 비슷한 또래였던 것 같았는데 스파이더맨은 나이를 전혀 먹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같은 집에 사는 메이 숙모는 점점 젊어지고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의 수다는 어지러웠고 현란한 공중제비는 제가 방사능 거미에 물린다고 해도 따라할 수 없다고 제 몸이 고백했습니다.

그는 영원한 10대이고 저는 10대를 도저히 이해할 수조차 없는 ‘아재’인 것입니다. 그는 사춘기 때부터 쭉 영웅이었고 저는 오늘도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며 떨고 있는 ‘미생’인 것입니다.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과 마찬가지로 제가 따라갈 수 있는 모델이 아닙니다.

스파이더맨을 만만하게 봤던 과오를 뉘우치며 오늘부터 저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언젠가 날아보자꾸나’라면서 제 몸을 괴롭히지 않고 그저 천천히 함께 걷는 연습을 다시 시작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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