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기쁨의교회 김대조 목사 ‘신앙 에세이’ (6)

▲ 김대조 목사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 남쪽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요 수상 가옥들로 유명한 똘레샵 호수가 있다.

깨끗해 보이지 않는 황토색 물위에 얼기설기 지어진 가옥과 함께 가축도 있어서인지 냄새가 났다.

작은 양동이를 타고 배 사이를 다니며 손을 내밀어 “원 달러!”를 외치는 아이들. 그들을 이용해서 돈 벌이를 하려는 어른들. 삶의 질이 열악하기 짝이 없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1975년 공산주의 무장단체였던 크메르루즈 폴 포트 정권은 1979년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아래 최대 200만 명의 교사, 학자 등의 지식인들과 기업가, 지주 등의 부유층들을 학살했다.

똘레샵 호수 그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수십 년 후퇴한 캄보디아의 어둡고 아픈 역사를 보았다. 잠시 말없이 사색에 빠져 잔잔한 똘레삽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조각들.

참으로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 어머니는 남의 논에 나가 모내기를 하고 일당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꾸리셨다.

이른 새벽부터 모를 심고는 저녁 8~9시 되면, 다음 날 모내기를 하기 위해 미리 모를 찌러 가셨다. 거기까지 품삯에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음 집으로 모를 찌러 가셨는데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모판에 앉고 보니 어린 마음에 ‘언제 이것 다하고 집에 가서 자나?’ 하고 큰 한숨이 절로 났다.

새벽 1시~2시. 나는 마침내 모를 다 찌고 집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다. 순간 서늘한 치맛자락이 스쳐 설은 잠을 깼다. 어머니는 그새 새벽기도를 다녀오셔서 아침상을 차리고 다시 일을 하러 나가셨다.

우리 삼남매를 공부를 시키시기 위해 힘들고 고단한 삶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안에 희망을 품고 견디셨음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

똘레샵 호수 위에 생각지도 못한 몇몇 되지 않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는 작은 학교가 있었다. 그곳을 방문하며 그 어린 아이들의 눈빛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희망을 보았다.

자식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시고도 새벽제단을 쌓으러 나가셨던 내 어머니가 예수 안에서 나를 향하여 품으셨던 희망. 그들에게도 예수의 복음이 들어가면 캄보디아 땅을 변화시킬‘예수의 푸른 의의 나무’로 자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똘레삽 호수 위의 아이들에게서 본 희망, 예수가 없었다면 절망으로 몸부림쳤을, 그러나 예수로 인해 온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나’의 존재에 대해서도 감사하다.

이해인 시인이‘아침에 잠에서 깨어 옷을 입는 것은 희망을 입는 것이고, 살아서 신발을 신는 것은 희망을 신는 것’이다 고 했듯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은 사소한 일상 조차도 희망임을 믿는다.

저작권자 © 뉴스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