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기쁨의교회 김대조 목사 ‘신앙 에세이’ (4)

말씀 앞에 설 때마다 몰려오는 부끄러움.  새벽에 한 시간씩 간절히 기도하고 예배당을 나오다가도 지나가는 작은 말 한마디에 ‘아니 무슨?’ 하고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그렇게 쉽게 감정적으로 흔들려 버린 나의 연약함과 직면했을 때도 말씀을 아는 대로 살아내지 못함이 부끄러웠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는데…’ 여전히 죄 된 나의 육신은 말씀을 가로막고 있다. 목사가 되어서도 ‘나’를 끊임없이 들여다봄이 쉽지 않다.

조금만 더 먼저 나를 들여다본다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들이 이해가 되고 받아들이기 쉬울 텐데. 유안진의 시 <키>는 내 마음의 고백과도 같다. 

키 / 유안진

부끄럽게도
여태껏 나는
자신만을 위하여 울어 왔습니다
아직도
가장 아픈 속울음은
언제나 나 자신을 위하여
터져 나오니

얼마나 더 나이 먹어야
마음은 자라고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남의 몫도 울게 될까요
삶이 아파 설운 날에도
나 외엔 볼 수 없는 눈
삶이 기뻐 웃는 때에도
내 웃음소리만 들리는 귀
내 마음 난장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더 깊이 품고 안아주고 받아주어야 할 성도들을 향하여 불쑥불쑥 올라오는 섭섭함. 많이 자라야 하는‘내 마음 난쟁이’의 모습. 아직도 ‘나의 의’가 중심에 있음을 본다.

누가 썼는지 그전에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글이 생각난다.

“하늘에 계신”하지 마라. 세상일에만 빠져있으면서
“우리”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여” 하지 마라.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지 마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지 마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지 말아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마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어쩐지 억지 같아 싫었던 이유 뒤에는 내게도 보이는 부끄러움을 부정하며 거부했기 때문이었을까. 설사 오늘의 부끄러움이 내일 또 다시 반복되더라도.‘그렇게 되지 않으려 씨름하리라’ 다짐해 본다.

그래서 더 열심히 주기도문을 매일 마음에 담아본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주기도문 앞에 서리라.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능력을 구하며, 주님께 가는 그날까지.

“주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대로 오늘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내 마음 난쟁이’라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오늘도 한 걸음, 믿음의 키가 한 뼘이라도 더 자라게 하시고 그리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따라 이 기도가 더욱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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