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계 6월호]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이기식 전 해군작전사령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천안함 폭침 직후부터 약 두 달간 천안함 브리핑을 맡았다가, 천안함이 소속된 2함대 사령관으로 부임 언론으로부터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로 불렸던 이기식 전 해군작전사령관(중장)을 <신앙계 6월호> ‘커버스토리’가 만났다.


40년간 남원함장과 광개토대왕함장,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해군사관학교장,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부장 등을 지내다 올해 1월 전역한 이기식 전 해군작전사령관(중장)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직후부터 약 두 달간 천안함 브리핑을 맡았다.

당시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준장)으로 재직 중 대(對)잠수함 작전 전문가였기에 가장 적임자로 판단된 때문이다. 천안함 브리핑 당시 그는 많은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천안함이 침몰돼 바닷속에 있는 것만 확인됐을 뿐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는 40년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좌초설, 기뢰 충돌설, 미군 잠수함 충동설부터 자자극이라는 말까지천안함 괴담이 확산됐을 때라고 고백한다. 가짜뉴스가 언론에 도배돼 괴담이 확산되고 남남갈등이 초래된 때문이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두 달간 브리핑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매일 2-3시간 엎드려 자면서도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사건이 수습되면서 유가족들이 군을 많이 도와주셨어요. 언론도 제대로 보도하기 시작했고요.”

그는 2012년, 천안함이 소속된 2함대 사령관(소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한 일간지에서는 그의 2함대 발령을 두고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부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는 2함대에 있을 때 장로임직을 받기도 했다.

“제게는 엄청난 부담감이 몰려왔습니다. 적이 또다시 도발해 온다면 저는 말할 것도 없고 군이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무조건 새벽예배에 가서 기도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저로 인해 하나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지요.”

그는 천안함 사건 뿐 아니라 2004년 광개토대왕함 함장으로 쿠웨이트까지 가는 긴 여정의 작전 수생 중 엔진 고장으로 인한 해상 긴급 주유 시나, 2016년 링스헬기 추락에 따른 시신 인양 작전 등 군 생활의 고비마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갔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이 전 사령관은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 잠시 다니다가 교회와 멀어졌다. 이후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생도 때부터 신앙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 전 사령관은 3대 해군 가족이다. 아버지는 해사 4기 고 이흥섭 대령으로 6.25 때 생도 신분으로 큰 공을 세워 생도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3형제 중 장남인 이 전 사령관은 해사 35기고, 막내 이기남 중령은 해사 38기다.

이 전 사령관의 아들은 해군에서 병사로 복무했다. 이 전 사령관의 부인 김태숙(56)씨도 해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이 전 사령관의 현재 가장 큰 소원은 손원일선교센터 건립이다.

장교들끼리 숙식하며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해 1970년 경남 진해에 마련된 ‘다락방’을 손원일선교센터로 이름을 바꾸며 재건축하는 것이다.

해군은 한 번 배를 타고 나가면 한 달 두 달 후에 돌아오는데 배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가 어려운바, 다락방에서 훈련받은 장교들이 장병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리더로 성장해야하는데 건물이 많이 노후 돼 재건축하면서 이름도 바꾸려 하는 것이다.

“손원일제독의 아내, 해군의 어머니 홍은혜 권사님께서도 생전에 다락방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계셨지요. 늘 오셔서 장교들과 부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기도해주시고 양육해주셨습니다. 이제 곁에 안 계시지만 하늘에서 기도해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모쪼록 손원일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고 힘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인터뷰 전문은 <신앙계 6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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