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화를 이루는 두 가지 정신사적 원류는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이다.

헬레니즘은 원래 그리스 고전기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제에 의해 국제화된 문화를 가리키는 제한된 의미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그리스문화 수용 이후 지중해 유역을 넘어 제국의 전 영토로 확산되는 과정을 거치며 그리스-로마 고전 고대(Antike) 전반의 의미로 확장됨으로 서구문화를 형성하는 한 축을 이룬다.  

헤브라이즘도 본래 근동아시아 팔레스타인 지역의 국지적인 구약종교를 뜻하였다.

하지만 로마제국 시대에 그리스도의 도래 이후 제국의 공인(313)과 국교화(392)를 거쳐  제국의 전역 즉 지중해 권을 넘어 알프스 이북의 게르만-켈트족에게 전래되어 중세사회를 형성함으로 기독교(Christentum) 전반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되어 서구문화의 또 다른 중심축을 이룬다.          

15세기에서 16세기 전 유럽을 풍미하였던 르네상스(Renaissnace) 운동은 중세라는 장벽을 넘어 고전 고대(Antike)로의 회귀 즉 헬레니즘의 재생(rinascita)을 기치로 하였다.

하지만 인문주의자(Humanist)들의 이러한 구상은 실제로는 고대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 근세의 진입으로 전개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16세기 알프스 이북 독일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종교개혁(Reformation)은 로마  교황청이 주도한 전성기 르네상스(High Renaissance) 시기에 동시적으로 발생하였다.

고전 고대에서 중세로의 완만한 전이 단계인 고대후기(Late Antiquity)를 매듭지은 9세기 카롤링거 르네상스(carolingian renaissance),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재발견에서 비롯된 이른바 12세기 르네상스(C. H. 해스킨스) 등의 중세 르네상스들은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5-74)에 의해 수립된 스콜라신학체계에서 중세의 완결을 이룬다.

이는 역설적으로 14세기 르네상스 여명기(Proto-Renaissance)를 배태하는 모태가 되기도 하였다. 
   
종교개혁은 중세를 ‘넘어서기’ 위해 고전 고대로의 회귀를 추구한 르네상스 운동의 정신, 실천과 일정부분 결합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 중세의 ‘개혁’을 지향함으로 결정적으로 구분된다.
  
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종교개혁이 서구문화의 두 원류 중 헤브라이즘에 철저히 기반을 둔 정신사적 운동이라는 데에 있다.

그것은 친 아우구스티누스 적 경향을 보이며 13세기 이래 가톨릭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토미즘(Thomism)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제반 사회·경제적 변화를 기반으로 한 신대륙의 발견(1492), 비잔틴제국의 몰락(1453)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대 근세에 부합해 헤브라이즘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었다.
   
르네상스가 도달하려한 중세의 해체, 새로운 세계의 구성은 복음의 재발견에 근거한 새로운 신학적 사고가 삶의 모든 영역에 작용함으로 종교개혁에서 구현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시대와 고전 고대를 단절하고 있는 중세(中世)를 자각함으로 르네상스를 연 첫 인문학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74)의 인식론적 전환이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산 ‘몽 방투’(Mont Ventoux) 정상에서 읽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Confessiones)에서 비롯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높은 산, 깊은 바다, 세찬 격류, 대양의 파도, 하늘의 별의 운행을 보면서들 감탄한다. 하지만 제 자신(인간)을 보고는 감탄할 줄 모른다’ (고백록 10장)

페트라르카의 자각은 몽방투를 내려와 ‘인간’에 대한 탐구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의 길을 추구함으로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와  함께 르네상스의 여명이 동트게 한다.      

그로부터 두 세기 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로 성직 생활을 시작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 의해 종교개혁이 전개된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주목한 욕망의 지배와 죄의 굴레에 매인 ‘인간 내면’에 대한 문제의 해답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 증거 하는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에 대한 오직 믿음(sola fide)을 고백함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직 은혜(sola gratia)로 임하는 구원에서 구하였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그리스도교와 그리스철학(신플라톤주의)의 종합을 통해 신국의 꿈을 품은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의 이상이 그로부터 천년 후 페트라르카와 루터에 의해 인간과 인간내면의 주목, 고전고대의 회복과 복음의 재발견,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전개됨으로 마침내 중세가 저물고 근세가 도래한 것이다.

▲ 산드로 보티첼리, 서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c.1480, 프레스코, 오그니산티 교회, 피렌체
▲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페트라르카, c.1450, 프레스코,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 대 루카스 크라나흐, 아우구스티너 수도사로서의 루터, 1529, 드로잉, 루터하우스, 비텐베르크

[위의 글은 2017 코스테(유럽유학생수련회)에서 행한 강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독교미술사적 조명’ 서론 부분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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