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립교회 자립기반 구축ㆍ이중직 도입 및 최저생활비 보장 등

▲ 교단, 특히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 할 일을 위해 부총회장 출마의 뜻을 피력 중인 정도출 목사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법과대 교수를 꿈꾸던 중 갑작스러운 병마로 쓰러져 임종예배를 보던 중 하나님의 치유의 은사를 받아 기적처럼 살아난 후, 부흥사가 돼 지금도 변함없이 전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정도출 목사(비전교회)가 예장 통합총회 부총회장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교단, 특히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확신한 때문이다.

신대원 1학년 때인 1981년 개포동에 교회를 개척한 지 한 달도 못돼 부흥회를 인도한 이래 지난 36년간 매주 한 차례 이상 부흥회를 이끌어 지금까지 3000회 이상 부흥회를 인도한 정도출 목사는 고 신현균 목사 이후 가장 많이 부흥회를 인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기자들을 만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지막 사역으로 주신 사명에 순종하기 위해 예장 통합총회 부총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그 사명이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기에 교단을 통해 그것을 구현하기 위함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바닥의 마음을 총회에 전하고 총회의 정책에 영성을 담아 개교회까지 전하는 지도자의 역할이 정말 필요할 때입니다. 작은 교회를 살리고,그들이 총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 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제 마지막 사명은 작지만 건강한 교회가 서로 연합하여 세계선교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의 띠를 더 단단하게 묶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3,000여 회 이상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한국교회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저는 그저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길 기도드릴 뿐입니다."

다음은 정도출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평소 갖고 계신 신앙 철학은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역사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믿음신앙으로 말씀을 철저히 믿고 실천하면 모든 어려움과 고난도 타개 된다고 본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자 들이다. 내가 사랑하기로 결심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엔진은 가동되기 시작한다.

― 처음 목회 활동을 시작 했을 때와 비교해 지금의 목회활동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36년 전, 당시 황량한 들판이었던 개포동 배 밭 옆 맨땅에 돗자리를 깔고 부부가 함께 어렵게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당시 교회를 찾는 신도 수는 모두 3명. 아내와 교인 2명이 전부였다. 이곳 위치가 경기여고 뒤편으로 지금은 강남의 주요 도심지 이지만 당시만 해도 과수원이나 들판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신도수가 늘어났다. 신도 숫자는 적었지만 당시 교회에 나오는 신도들의 열의는 어느 교회보다 대단했다. 불과 1년 만에 신도수가 200여명으로 늘어나 대치동에 있는 상가 건물로 이사를 해야 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했고, 지난 91년 지금 시무하고 있는 송파구에 비전교회를 건축했다. 지금은 신도 수 1000여명에 부목사 3명, 전도사 2 명의 중 대형 교회로 부흥됐다. 현재 필리핀 3명, 인도네시아 1명, 태국 1 명 등 총 5명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했고, 국가마다 선교지에 매월 20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10여 년 전에는 700여개의 교회가 속회 있는 송파구 기독교연합회장을 역임하며 어려운 개척교회와 장애인, 독거노인들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 목회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처음부터 목회자를 꿈꾼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꿈은 미국에 가서 신학공 부를 더 하고 장신대 교수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중 하나님께서 선교교회를 세우라는 영감을 받고 교회를 개척했다. 교회개척 후 수 시로 부흥회를 여는 한편 열심히 전도하고, 영성교육을 가졌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끊임없는 노력으로 영광스런 목사직을 맡게 됐다. 더 구체적으 로 말씀드리면 지난 72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 한 후 기독교 장로직을 맡 고 계셨던 부친의 간곡한 권유로 목사가 됐다. 당시 나의 꿈은 학교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법과대 교수를 하던 가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병마가 찾아왔다. 그것도 주요 장기인 간이 곪아터지는 무서운 병이었다. 모든 의사들이 치료를 포 기한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임종예배를 보던 중 하나님의 치유의 은사를 받아 기적처럼 살아났다. 그때 느낀 성령의 손길 체험은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신학대학을 졸업 후 부흥사로 전국 3000여 교회를 찾아가 부흥에 앞장섰고, 지금도 변함없이 전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 파하고 있다.

― 현재 몸담고 있는 직책이 ‘통합총회 서울 강동노회소속’ 으로 알고 있는데 통합측의 주된 내용을 설명 한다면

통합측 소속 교단 교회는 전국에 9000여개나 있다. 통합측의 특징은 종파 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교회가 연합하고 전도하는 교회다. 통합측의 이념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일이 나의 일이다. 교회의 사명은 교단도 중요하지만 복음에 대한 신념이 강해야 된다. 기도원의 300용사가 모인 것처럼 기독교인들의 사명감과 한국사회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종파에 연연하지 않고, 모두가 연합해 하나님의 사명감을 실천하는데 노력해야한다.

― 목회활동을 하면서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 한국교회는 신도 한 사람 한사람이 빛과 소금이 되는 강력한 신앙이 필요한 시기다. 교회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신적인 지주가 돼야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부의 시책 중 잘못된 점이 있다면 교회가 앞장서 비판 할 줄 아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대부분 한국교회들은 저항의식을 갖고 국민들에게 바른길을 제시 하는데 소홀히 해왔다. 모든 교회들은 찬미 일색이다. 앞으로 건전한 비판과 저항의식이 필요하다. 요즘 시국은 한마디로 표현해 혼돈과 절망의 시대이다. 사상적이나 문화적인 면 에서도 젊은이들이 마땅한 직장이 없어 방황하는데도 보수와 진보가 맞서 논쟁만 하는 혼동의 시대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먼저 기독교인들이 앞장서 국민들을 위한 정직운동을 벌여야한다. 모든 일이 예수 안에서 복음 안에서 이루어 질 때 진정한 희망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와의 싸움에 노력해야 한다.

― 한국교회에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919년 3월1일 독립운동 당시 전국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30만 명이 있을 때만 해도 사회가 교회에 희망을 걸었다. 오늘날 다시 교회가 우리사회에 희망을 주는 정신적 구심점이 되도록 노력해야 된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아 기독교인 모두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하는데 힘을 기울여 야 한다.

― 부총회장 출마를 생각하는데 부총회장에 선출되어 총회장이 된다면 중점적으로 할 일은 어떤 것인가

시무하는 교회는 다른 목회자에게 맡기고 전국에 있는 규모가 적은 교회 를 찾아다니며 기도와 헌금을 통해 부흥하고 자립기반을 만들도록 자신 감과 용기를 불어 넣을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실정은 통합측만 보더라도 9000여 곳의 교회 중 교인 숫자가 100명이 넘는 곳은 19%에 불과하다. 이중 자체건물을 갖고 있는 교회도 15% 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모두가 소형교회로 운영이 열악하다. 앞으로 통합측 미자립 교회들의 동반성 장을 위해 위원회를 통해 최소한 1개 교회에 100만원씩을 지원하고, 연금 가입 등을 통해 목회자들의 최저생활비를 보장 할 것이다. 목회자도 커피숍, 택시운전, 여타의 상업 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도록 이중직 목사제도를 도입할 것이다. 물론 모든 움직임은 목회자의 품위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락할 방침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 통합 측 선교사가 1300여명 이 파송된 점을 감안, 어려운 나라 사람들을 돕는 데도 우리 교단이 앞장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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