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계 11월호] ‘한국 해군의 어머니’ 홍은혜 권사

1945년 11월 11일 해군(당시 해방병단) 창설 이후 지금까지 해군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사랑으로 품어온 홍은혜 권사(100세). 우리나라 해군 역사의 산증인이자 영원한 멘토로 ‘해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그를 <신앙계 11월호> ‘커버스토리’가 만났다.


1917년 생으로 올해 100세인 홍은혜 권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원장이자 정동교회 담임이었던 손정도 목사의 맏며느리이자 대한민국 해군 창설자로 초대 해군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초대 독일 대사를 역임한 손원일 제독의 아내다.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홍은혜 권사는 마산고등여학교를 거쳐 이화여대 전신인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날 손원일 제독과 결혼했다.

홍 권사는 해방 후 남편의 해군 창설의 꿈을 함께 일구며, 최초의 대한민국 해군 군가인 ‘바다로 가자’를 비롯해, 해군사관학교 교가인 ‘해사 교가’ 등 많은 해군가를 작곡했다.

또한 해군부인회를 창설, 초대 회장으로서 부인들의 삯바느질로 우리나라 최초 해군함정인 백두산함을 구입하는 데 일조하며 한국전쟁 후 상이군인들을 보살치고 위로하는 일에 헌신했다.

믿음의 가정에 시집가 대한민국 건국사의 길을 함께 걸어온 홍 권사의 삶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버지인 손정도 목사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의 남편인 손원일 제독도 일본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고, 물질적인 어려움도 겪어봤다.

“그러나 우리가 제일 고생하고 가나했던 때는 바로 남편이 해군 참모총장을 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해군의 상황은 열악했습니다. 손원일 제독은 전단지를 뭍이며 해군을 모집, 처음 70명의 지원자를 모았지만 먹을 것조차 제대로 먹이지 못해 30명으로 그 수가 줄었습니다다,”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이 없으니 모든 것을 자비로 해결해야 했던 때다. 홍 권사에게는 이들 모두가 가족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해군을 품고 그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방법으로 해군부인회를 조직해 전쟁고아들과 해군병원 환자 및 상이군인들을 위해 빨래를 해 주고, 편지도 써주면, 밥을 먹여주고, 대소변까지 돌봐주는 등 이들을 돌보는 일에 자신의 몸을 아기지 않았다.

6ㆍ25전쟁이 끝난 1956년(국방부 장관 시절)에는 전쟁미망인들의 생활터전 마련을 위해 성루 동대문구 용두동에 2만 평의 땅을 확보, 공장을 짓고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이 미군 PX에 납품될 수 있도록 미군 관계자들을 설득해 저들의 삶을 도왔다.

해군 참모총장의 부인임에도 허름한 일본식 몸빼 바지를 입고 다녀,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몸빼 부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모두를 마치 예수님 대하듯 했기에 해군들은 그를 ‘해군의 어머니’로 불렀다.

“살아보니 100년도 한순간이네요. 이제야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갑니다. 사랑할 시간도 부족합니다. 최고의 건강비결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알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홍은혜 권사 인터뷰 전문은 <신앙계 11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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