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살리고 세우는 목회에 남은 사역 ‘올인’ 중입니다”

“가정을 살리고 세우는 목회에 남은 사역 ‘올인’ 중입니다”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위치한 경원교회 담임 김원삼 목사.

그는 개척목회자의 심정과 결단으로 자신의 마지막 남은 사역을 가정을 살리고 세우는 목회와 일선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일에 불태우고 있다.

전남 무안에서 6남매 중 4째로 태어난 김원삼 목사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976년 서울에 상경해 지내던 중 6촌 누님의 전도로 신앙을 갖게 됐다.

이 당시 김 목사의 신앙 열기는 당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한국교회의 신앙 열기와 함께 뜨거웠다. 그의 이러한 신앙 열정은 목회자로의 부르심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 이어졌다.

군 제대 후 비교적 늦은 나이인 28세 때 예장합동 총회의 교단 신학교인 총신대에 입학한 것이다. 이어  그는 총신대 신학대원을 거쳐 1988년 35세에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됐다.

김원삼 목사는 목사로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선교에 대한 관심이 컸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가 가진 선교에 대한 관심은 선교사가 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선교하는 이들을 돕는, 군대로 치면 병참부대와 같은 일에 관한 관심이었다.

총신대 시절 학내 써클인 공산권선교회에 가입해서 적극 활동하는 한편, 당시 가장 활발하게 북한선교 관련 활동을 하던 충현교회에 출석, 북한선교회에 가입해 활동하는 등 선교회 활동을 통해 선교사와 선교지를 도왔다.

어릴 적부터 모임 만드는 일을 잘한 김원삼 목사(고등학교 때 만든 친구 모임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만남이 계속 이뤄지고 있을 정도다)는 총신 신학대원 시절에는 농어촌교회 사역자를 돕는 조직을 구성, 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선교에 대한 그의 이러한 관심은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어느 한 해도 선교를 멈춘 적이 없다.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선교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 김 목사의 각오다.

1990년 5월 7일에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교회를 개척, 단독 목회에 나선 이후 그의 선교사역은 더욱 활발해져 교회 차원에서의 선교를 넘어 1995년에는 내륙선교회를 조직, 북한 선교의 전초 작업으로서 중국을 비롯 주변 내륙 14개국 선교에 본격 나서기도 했다.

2000년부터는 총신대 신학대학원 입학 동기들과 후원회를 조직해 매월 10명의 선교사에게 40만원씩을 후원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는 동기 중 한 명이 카메룬에 선교사로 나간 것이 계기가 돼 교회 차원에서 선교센터 마련을 지원하고, 그곳에서 신학교를 세워 운영 중이다.

2004년 2년제 정식 신학교로 개교돼 운영되다 올해 3년제로 바뀐 신학교는 지금까지 9회에 걸쳐 매년 15-20명의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다. 김 목사는 지금은 이사장으로 신학교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김 목사는 카메룬에도 우리나라의 국가조찬기도회와 같은 기도 모임이 필요하다 생각해, 지난 2011년 당시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장헌일 사무총장의 도움으로 ‘카메룬 국가조찬기도회’가 설립되게 했다. 


이상의 내용만 보면 ‘김원삼 목사는 목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김 목사는 교회성장의 목표를 제자훈련과 양육에 두었다. 비록 외형적으로는 규모가 큰 교회는 아니지만 성경이 말하는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열심으로 주님께 헌신하는목회자다.

1990년 5월 7일 설립예배를 드리고 7년 후, 경원교회는 개척 당시의 위치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땅을 매입해 교회를 신축했다. 이후 교회는 열심히 성장했다. 그러던 중 교인들 간 갈등이 생겨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제자훈련, 네비게이토, 프리셉트 등 열심히 성경공부를 시켰던 그는, 내홍을 겪으면서 안타깝게도 성경지식만 가진 소위‘머리만 커져 버린’ 성도들이 대세를 이루는 주님 보시기에 안타까운 교회의 모습이 돼버렸다. 이일을 교훈삼아 삶이 하나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추구하는 쪽으로 목회 방향을 바꿨다.

그러던 중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쉐마교육이다. 한국교회가 살려면 가정이 살아야 한다는 확신이 생긴 가운데 ‘3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가정’을 추구하는 쉐마교육이 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이에 지난 2013년부터 교회 사역에 쉐마교육을 접목시켜 목회 중인데 가정적으로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김 목사의 간증이다.

“앞으로 남은 목회 기간 동안 지금까지 해 오던 선교 사역은 그대로 지속적으로 진행해 가면서, 교회 사역은 개척 목회자의 심정으로 가정을 살리고 세워서 다음 세대를 말씀 맡은자로 세워서 신앙의 3대명가를 만드는 일에 올인하려 합니다. 좋은 결과가 있을 줄 확신합니다.”

목회 사역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김원삼 목사의 결의에 찬 각오와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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