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선교사 순교 150주년 기념 심포지엄’ “순교자 맞다” 반박

150년 전인 1866년 8월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입국했다 그해 9월 관군(官軍)에 의해 살해당한 토마스 목사(1840-1866)의 죽음이 순교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재가열되는 양상이다.

토마스 목사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선교사로 불리며 한국교회로부터 순교자로 이해돼 왔다. 비록 배에서 내려 복음을 전한 적은 없지만 그가 선교를 목적으로 왔고, 죽으면서 넘겨 준 성경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는 기록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여기에 대한 도전이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가 1985년 ‘한국교회사특강’에서 토마스의 죽음을 순교로 평가하는 것에 강한 이의를 제기한 이후 올 6월 옥성득 박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자들이 동조하고 나섰다.

토마스 목사의 제너럴 셔먼호 승선을 제너럴 셔먼호의 입국과정 및 입국 후 행동과 동일시해, 중무장을 하고 불법으로 들어온 제국주의 침략선인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온 사람이 어떻게 선교사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당연한 논리로 순교자일 수는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토마스 목사가 죽으면서 성경을 전해고, 이로 인해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나타났으므로 순교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것이 기록된 역사적 사료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참고로 이들은 이만열을 비롯해서 김승태, 한규무, 김명호, 옥성득 등 한국기독교역사학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굳이 분류한다면 상대적으로 진보적 계열의 민족주의적인 국사학자들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기독교사연구소(소장 박용규)가 5일 서울 사당동 총신대 종합관에서 ‘토마스 선교사 순교 1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고 다수의 발제자를 통해 ‘토마스 목사는 순교자로 봐야 한다’며 반박에 나섰다. 

▲ 5일 총신대 종합관에서의 심포지엄 모습

이날 발제에 나선 박용규 교수(총신대),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이은선 교수(안양대) 최상도 교수(호남신대) 등은 복음을 전파하려는 선교 열정을 가지고 왔던 점이 다른 요소들로 인해 제대로 평가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용규 교수는 “19세기 서구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적 사고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면서 “그러나 그런 제국주의적 영향 때문에 토마스의 입국이 선교적 동기가 아니라거나 그의 활동이 선교활동이 아니었다거나 그의 죽음이 순교가 아니라는 주장은 상당히 주관적 평가며 또 다른 비약”이라고 반론했다.

이영식 박사는 “저들은 ‘토마스가 조선에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것은 맞지만, 조선인들은 그것 때문에 토마스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면서 순교를 부정한다”면서 “그러나 이 논리라면 죽이는 측의 동기나 이유가 순교냐 아니냐를 좌우하게 된다. 즉 어떤 선교사가 식인종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사명을 감당하다 죽임을 당한다면, 이 경우도 원주민들의 입장에 의해서만 순교냐 아니냐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박사는 “또한 저들은 토마스 선교사의 최후의 장면에서 오문환의 증인들을 통한 증언이나 기존의 전통적인 한국교회의 인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데, 별다른 자료 제시 없는 문제제기는 혼란만을 제기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박용규 교수는 “저들은 토마스의 죽음의 극적 장면의 역사성을 문제 삼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표면적인 이유”라면서 “토마스를 침략적 제국주의를 배경으로 한 힘의 선교의 전형으로 이해하는 이만열-한규무-옥성득의 시각은 공교롭게도 제너럴 셔먼호를 바라보는 진보주의 국사학계의 시각, 심지어 북한의 시각과 상당히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에 이은선 교수도 “토마스 목사의 죽음을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라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순교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민족주의 사관, 반제국주의사관, 후기 식민주의 사관의 입장”이라며 “선교사적인 관점과 신앙적인 관점과 한국교회의 기원으로서의 관점에서 가지는, 그의 순교로서 참된 의미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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