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수감, 회복, 재기 그리고 다시 찾아온 헌신의 기회

▲ 회사 사훈 앞에 선 최상헌 장로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고난’하면 떠올리는 인물이 둘 있다. 요셉과 욥이다. 요셉의 고난은  긴 시간의 감옥 생활, 욥의 고난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삶으로 대변된다.

둘 중 한 사람이 겪은 고난만으로도 지긋지긋할 텐데, 두 사람이 겪은 고난을 무려 15년에 걸쳐서 겪은 끝에 요셉과 욥이 받은 복도 받아 누리며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힘을 쏟는 이가 있다. 도어용 자동방충망 생산 업체 ㈜KS스크린 대표 최상헌 장로(도원동교회)가 그다.

모태 신앙인인 최상헌 장로는 대학교 졸업반 때 결혼도 하고, 취업한 후 이내 집도 장만할 정도로 평탄을 넘어 잘 나갔다.

주일학교 교사였던 대학교 2학년 겨울의 어느 주일날 손 시리다며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아이가 “선생님 이게 뭐예요?”라고 물은 일로 인해 금연했던 바 있는 그는 건축자재를 생산 및 수입하는 회사의 영업사원임에도 신앙 양심에 금주를 선언했을 정도로 신앙에도 열심이었다.

큰 형님이 세운 회사로 자리를 옮긴 그는 회사의 주요 업무를 거의 도맡다시피 하며 회사 성장을 주도했다. 회사는 서울에 5층짜리 사옥과 지방에 제법 큰 규모의 공장을 지었고, 매일 아침 직원예배를 드리며 승승장구했다, 주의 사람들 모두 그를 부러워했다.

1992년 1월 회사에 인사사고가 발생했다. 공장 기숙사에 묶던 사원 1명과 알바생 1명이 밤에 마트로 뭔가를 사러가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전봇대를 박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을 도맡아 수습하던 그는 당시에 이 일이 그의 고난의 출발점인 줄 몰랐다.

2개월 후 납품 가던 회사 트럭이 금강유원지로 추락 역시 2명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사고 수습은 그의 몫이었다. 그런데 2개월 후 공장에 불이나 생산을 중단해야 했다. 뒤처리 역시 그의 몫이었다.

3개월 후 신제품 개발 출시를 앞두고, 거액을 들여 스카우트한 개발책임자가 회사 자금과 도면을 빼돌려 자기가 공장을 세워 신제품을 먼저 출시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경찰에 고발돼 조사를 받던 개발책임자가 8월 15일 투신자살을 하자, 매일 상복을 입고 회사 앞에 나와 ‘남편을 살려 내라’고 시위하던 그의 아내가 청와대에 세무조사 민원을 넣어 무혐의로 밝혀지긴 했지만 크게 곤혹을 치러야 했다.

다음해인 1993년 거래처의 연쇄 부도로 어려움을 겪던 회사는 1994년 결국 부도를 냈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의 책임자인 형님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부도 전날 미국으로 피신 하였다.
20년간의 수고가 한 순간 물거품으로 변한 것은 물론, 부도로 인해 회사 사옥과 공장은 물론 연대 보증된 아버님 댁, 최 장로의 분당 아파트, 누나와 동생의 집까지 모두 압류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남의 불행에 대한 수습으로 고난 아닌 고난을 겪어야 했던 최상헌 장로는 이제부터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한 수습으로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 최 장로는 부도 금액 40억원을 다 갚기 원하니 도와 달라고 기도했고 결국은 그의 서원과 기도는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최상헌 장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일, 즉 사채업자에게 납치돼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지하실에서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그간의 모든 일로 인해 힘들어하던 그는 이 일이 계기가 돼 심한 우울증에 걸려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사기혐의로 고소돼 서울 구치소에 수감돼 4개월간, 추석부터 1월까지 그것도 난방도 되지 않는 곳에 영어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끈은 놓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트던 어느 날 새벽 눈에 들어온, 수감방 벽에 붙은 1장짜리 1년 치 달력에 실린 사진은 그의 신앙을 더욱 깊이 있게 함은 물론 구치소 내에서 전도자의 삶을 사는 계기를 제공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아무 상관없는 너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겪기까지 했는데 너는 너희 가족들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게 그렇게 억울하니?”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이 마음속에서 들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옮겨가는 방마다 방장에게 매일 예배드릴 것을 제안했고, 희한하게도(?) 제안은 거절되는 일이 없었다. 이후 그는 구치소 내의 전도자로 불렸고, 많은 이들을 섬겨 그가 출소를 할 때에는 모두가 “나가지 말라”고 할 정도로 그들이 정신적 지주가 돼 있었다.

출소 후 한국에 대리점이 없는 외국 건축자재 회사들의 대리점 역할을 하는 일종의 프리랜서 형식으로 2007년 1월 지금의 회사를 설립한 그는 재기를 해, 부도로 인한 부채 40억원을 모두 청산하고 이제는 번 돈을 먼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는 일에 드리고 있다.

어려울 때 교회와 교인들로부터 받은 도움을 잊지 못하기에 그는 실직한 교인들을 직원으로 모셔 함께 회사를 운영할 뿐 아니라, 아프리카 선교에도 힘을 써 지금까지 8곳에 교회를 건축했고, ‘경건과 절제로 선교하는 가정’을 가훈으로 정하고 교회가 아닌 그의 가정이 2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라’라는 욥의 고백을 삶으로 경험했기에 ‘먼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제 인생의 최우선으로 살고 있고 그렇게 계속 살아가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전하는 최상헌 장로의 체험적 신앙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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