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으름’ 저자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

혼신을 다해 글을 썼지만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책이 있다. 쉽게 득달같이 썼는데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책도 있다. 김남준 목사(58, 열린교회 담임)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그의 책 ‘죄와 은혜의 지배’와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 게으름’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죄와 은혜의 지배’는 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 책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 많이 팔리지 않았다. 반면 ‘게으름’은 수십만부가 팔린 기독교계의 베스트셀러다. 한호흡에 내려쓴 쉬운 책이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김 목사는 사춘기 시절 적잖은 방황을 했다. 김 목사의 방황은 ‘탈선’과는 약간 달랐다. 중학교 2학년까지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교인들의 언행 불일치와 표리부동함을 목도했다. 교회를 떠났다.

21살, 회심하기 전까지 6년 동안 지적 방황을 했다. 방황의 주제는 ‘내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였다. 교회의 도덕적 타락을 보면서 인생의 주제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교회에 발길을 끊고 중학교 때는 문학책을 섭렵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상·철학 서적을 통해 인생의 답을 찾고자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에 심취했다. 그의 책이면 무엇이든지 읽고 밑줄을 그었다. 인간의 악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사상과 신념에 반했다. 그러나 ‘초인’론을 주장하던 사람의 초라한 말로를 보면서 그는 니체를 떠났다. 염세철학의 쇼펜하우어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염증만으로는 고통과 악에서 세상을 구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쇼펜하우어도 떠났다. 그후 버트란트 럿셀에 매료되기도 했다. 철저히 무신론자가 됐지만 21살 때 주님을 깊이 만나면서 회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그는 각종 철학과 사상들을 등졌을까? 목회자가 된 지금도 김 목사는 동서고금의 철학과 사상들에 대한 안테나를 제거하지 않았다. 또 다른 차원에서 ‘흡입’ 중이다.

김 목사의 사무실이 위치한 경기도 평촌의 열린빌딩 6층은 담임목사실과 장서 5만여 권이 있는 도서관이 연결돼 있다. 그의 담임목사실까지 서재의 나무 향, 책 냄새가 흘러 들어올 정도다. 그의 사무실에는 독특한 책들이 여러 권 있다. 타종교의 경전은 물론 그것을 설명하는 각종 책자도 눈에 띈다. ‘리그 베다’, ‘이슬람’, ‘노자’, ‘장자’ 등이다.

그는 지금도 공부란 ‘읽어야 할 책을 읽는 것’, 휴식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책을 좋아한다. 기자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김 목사는 비서를 불러 되물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지?” 곧바로 “책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관심을 갖고 읽는 책은 ‘미식의 역사’다. 과학, 양자역학, 자연과학, 역사, 미술에 대한 책들도 섭렵한다. 그래서 그가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의 폭이 무척이나 넓다. 김 목사는 원자력 발전소 연구소장부터 비행기 조종사까지, 어떤 분야의 학자·철학자들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어거스틴을 10년 연구하고 조나단 에드워드를 20년 연구한 청교도신학의 전문가라고만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그의 지식 습득의 스펙트럼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청소년 시절의 지적 방황은 지금도 그를 ‘세상읽기’를 그치지 않는 목회자로 만든 것 같다. 매일 반드시 뉴스를 시청한다. 신문은 보수/중도적인 성향을 섞어서 4가지를 본다. 양쪽의 얘기를 같이 듣고 전체적으로 보려고 애쓰고 싶어서다. 경제·사회·문화 분야와 함께 이코노믹잡지도 구독하고 국방무기와 전쟁에도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이지스함에 대한 책을 뗐다고 말한다.

학문은 신학이 최고다. 그러나 결국 신학이 최고인 것은 다른 학문과의 관계에서 증명될 때 진가가 드러난다는 생각 때문이다. 청교도 신학의 전문가로서 이런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갖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목회자이기 때문에 세상과의 소통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게 김 목사의 지론이다. 김 목사는 교회안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로는 세상과 소통하기 어려워서다.

그래서 김 목사는 신학 고전과 인문학은 물론 현대인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철학사와 문학사, 역사를 통해 공부해간다. 세상 읽기를 위해 신문과 뉴스도 많은 관심을 갖고 보고 듣는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계 속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랑에는 이해가 동반돼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으면 설교는 공격적이 되기 십상입니다. 진리는 비타협적이지만 세상을 알 필요가 없다고 외면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열린교회는 설립 20주년이 돼 간다. 성도들은 4천여 명이 넘는다. 그의 설교는 짧지 않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는 “특별하게 설교의 은사를 받지 않는 이상 30분을 넘는 설교는 현대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목사의 주장에 비춰보면 확실히 김 목사는 설교에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다. 평균 40분, 때로 1시간 가까이 설교할 때도 있다.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는 일이 예사스러울 정도의 그의 설교에는 감동과 힘이 있다.

설교를 지금까지 35년을 해왔고 교회 개척한 지는 20년이 됐다. 그렇다면 그에게 설교는 익숙할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김 목사는 “아직도 설교는 내게 이국의 언어, 목회는 원하지 않는 가슴앓이”라고 답했다.

교회를 개척한 지 20년 동안 ‘목회는 딱, 내 일이다!’는 마음이 생긴 적이 없다. 지금까지 5천 번을 넘게 설교했다. 일년 365일 매일 설교했다고 가정할 경우 13년을 하루도 빼놓지 않은 셈이다. 지금도 1년이면 250번을 설교한다. 그런데도 개척 초기보다 요즘 설교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더 진액이 빠진다.

어떤 영역이든 10년이면 전문가가 된다고 했는데 설교는 죽을 때까지 늘 부족감에 시달릴 거 같다는 게 김 목사의 자기 고백이다. ‘특별한 설교의 은사자’라는 평가는 외부의 시각일 뿐이다.

김 목사가 목회에 대해 말한다.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 노력해서 열리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저 나무는 건강하면 된다는 것이다. 목회도 신앙에서 비롯된다. 기본적으로 목회도 하나님과 목회자의 관계다.

그는 신학생들에게 주님을 만난 흔적을 간직하라고 말한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말한다. 주님의 거룩함과 영광됨을 경험한 것을 보여 주라는 것이다. 이것은 학문이 아니라 영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붙들려야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것들이 목회자뿐 아니라 신학생들에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문도 얕고 경험도 못하고 있다면 설교는 얕아지고 영적·지적으로 매우 피상적인 설교가 잉태된다. 그런 설교는 피상적 교인을 양산하고 형식적인 교회를 만들어 간다. 결과는 어떨까?

형식적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룩한 에너지를 주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게 김 목사의 지적이다. 그러면서도 김 목사는 특정교회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교회가 겪는 아픔과 고통을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가십 소재가 되게 하지 말자는 게 김 목사의 생각이다. 뭔가 고치고 개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교회의 문제를 사랑이 없이 비난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플라톤과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플라톤은 “비판하기 전에 비판하는 대상을 사랑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거스틴은 “사랑은 정의의 완성이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모든 비판과 충고·정의 실현에 사랑이 전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에게 어느 날 우편물이 배달돼 왔다. 어떤 단체의 문제를 바로 개혁하겠다는 사람들의 인쇄물이었다. 펼쳐 보니 몰래카메라로 특정 대상을 촬영하며 문제를 지적해 놓았다. 입맛이 씁쓸했다. 비판자의 마음에 과연 비판 대상에 대한 사랑이 있느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인쇄물에는 분노와 억울함과 상처가 있었고 원한 맺힌 비판이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몸을 이루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의·사랑이 함께 가는 개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조국교회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한국교회라는 말을 쓰다 보니 왠지 주님의 몸인 교회를 객관화·객체화 시킨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부터 그의 모든 저작물에는 ‘조국교회’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김 목사는 교회 문제를 언급할 때 자신을 제거하지 않은 연합의 의미로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목사는 성도들이 하나님에게서 즐거움과 만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 이외의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으면 영혼에 변질이 온다는 것이다.

김 목사가 교제하는 절친한 동기들이 있다. 김윤기 목사(남부중앙교회), 박순용 목사(하늘영광교회), 백금산(예수가족교회), 화종부 목사(남서울교회) 등이다. 같은 동기지만 나이는 김 목사가 제일 많다. 아직 그는 안식년을 갖지 않았다. 2주 연속으로 강단을 비운 적이 아직 없다. 그러나 조금 쉬어야 겠다는 생각을 종종하고 있다. 얼마 전 목을 수술했다. 의사가 설교를 쉬어야 한다고 했다. 무시하고 설교를 했다.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6월 이후에는 조금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과연 그가 잠시라도 사역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 스스로 회의적일 정도로 김 목사는 교회에서 책을 보고 말씀을 보고 공부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게 무척이나 행복하다.

그러나 조금 더 긴 안목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중 한사람인 김 목사가 안식년을 갖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그는 휴식을 통해 분명히 재충전을 꾀하며 새로운 차원으로 사역을 승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지 제휴 '기독교포털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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