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르포] 2012년 끝자락, 동자동 쪽방촌 주민의 삶을 돌아보다

단어와 글로는 상황을 다 담을 수 없는 장소가 있다. 하루 몇 시간이나 짧은 경험만으로 그 곳 삶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곳이 있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매일 작은 희망을 꽃피우는 곳.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이곳엔 1천 가구의 쪽방이 밀집해 있다. 서울역 11번 출구에서 후암로를 따라 비스듬히 경사진 길을 오르다보면 건우약국이 보인다. 그곳에서 오른쪽 골목길을 따라 오르면 쪽방촌 주민이 함께 세운 사랑방마을공동체협동조합을 만날 수 있다.

쪽방에 대한 주민의 생각은 어떨까. 동자동 쪽방주민공동체를 운영 중인 이태헌 이사장은 “이 세상 머리 누일 공간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한 평 안 되는 작은 공간이 바로 쪽방”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쪽방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쪽방촌 주민의 65% 가량은 기초생활수급자이며 또 39% 가량은 노숙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58% 가량은 직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인지 쪽방촌 주민 4명 중 3명은 약 50만 원의 월수입을 가지고 살아간다.

주민의 대부분은 기초수급자이거나 월 93만 원 이하의 소득으로 지내는 차상위계층 주민이다. 보통 쪽방은 3㎡ 크기로 한 평이 안되거나 조금 넘는 방을 말한다. 보통 한 사람이 누울 넓이의 공간에 화장실과 욕실 취사시설이 없기 때문에 겨울이나 여름에는 곤란한 일이 다반사다.

동자동 사랑방 관계자의 소개로 찾아간 낡은 쪽방촌 건물. 50년이 훌쩍 넘은 건물의 입구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벽에 바른 페인트는 여러곳이 벗겨져 나가 색이 바랜 채 방치돼 있었다.

복도를 가로 지르는 빨래줄 위로 길게 늘어진 이불 아래는 낡은 의자와 오래된 자전거와 공용 정수기 한 대가 놓여있다. 층 사이사이 자리잡은 공용화장실은 큰 공장용 벽돌을 딛고 올라서야 들어설 수 있을 정도. 낡은 4층 건물엔 그렇게 50여 가구가 둥지를 틀고 있다. 그 중 한 가구를 방문해 보았다.

# 매일 사는게 빚이네요

한 평 남짓한 방 문틈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 들어온다. 차가운 바닥과 식어버린 공기는 그나마 몸누일 좁은 공간을 더 좁은 듯 느껴지게 만든다. 좁지만 천장만큼은 유난히 높아서인지 쪽방은 한기가 많이 돌고 우풍이 세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조두선 씨(51세. 남). 그는 최근 나타난 당뇨합병증 증세로 몸이 많이 불편하다. 몸 곳곳에 나타나는 붓기와 좁아진 시야는 그나마 가만히 오래 앉아만 있어도 몸을 고통스럽고 힘들게 한다. 최근에는 심해진 합병증으로 계단도 올라가기 힘든 형편에 놓였다.

방에는 소형 TV와 반찬 몇 통 보관할 수 있는 작은 냉장고를 제외하면 특별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곰팡이 핀 방에는 이불 한 채와 옷가지 몇벌만이 놓여있을 뿐, 50년이 넘은 건물이 풍기는 느낌은 화면에서 보던 쪽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조 씨가 몸을 누인 한 쪽 벽에는 서울 성남교회의 한 집사님이 손수 만든 나무 십자가가 걸려있다.

“지금은 하루하루 사는게 다 빚이에요. 그전에는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일이라도 조금했는데 지금은 아예 움직이지 못하니까. 다시 노숙의 길로 들어서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좁은 공간이지만 매달 나가는 월세는 16만원. 이전에 몸이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는 학원 차량을 운행해 돈을 약간 벌었지만 지금은 그나마도 힘들다.

매달 받는 기초수급 40여만 원에서 방세와 약값, 병원비, 교통비를 제하면 수중에 남는 돈으로는 끼니를 때우기도 어렵다. 약값과 인슐린 주사약값만 5만 원. 그나마 당뇨 수치를 측정하는 혈당 체크는 하루 한 번도 하기 힘들다.

“혈당이 오르내리는 걸 체크하지 못한 채 방치하다가 갑자기 저혈당으로 떨어진적이 몇번 있었어요. 그럴때면 온몸이 춥고 떨려 숨도 제대로 못 쉬게 됩니다. 대비책이 없는 경우엔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죠.”

6개월 전부터는 그나마 꾸준히 나오던 기초생활수급금마저도 끊겼다. 70세 노부모가 거주하는 집 공시가가 1억 2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으로 올라 수급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를 하는 부모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조 씨는 “이젠 뵐 낯이 없어 손벌리기도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된 도리로 금의환향을 못할 망정 맏아들로 다 병들어 어떻게 돌아가겠는가라고 되묻는 그. 차타면 한 시간 거리, 언제든지 가서 저녁먹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부모님이 있지만 여러해 동안 뵌적도 이곳을 벗어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다음달이면 쪽방에서도 나가야 하네요. 앞을 보면 미래가 없어요. 몸이 건강해져 다시 재기한다면 다행인데. 이제 제겐 그럴 힘이 없네요. 죽어도 밖에서 죽어야하고 그렇게 되는 거죠.”

예전 건물 사무실 천장 경량철골 내장 공사를 할 때까지만해도 그나마 괜찮았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딸과 부인과 함께 행복한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1997년 IMF 한파가 찾아왔을 때 그의 사업과 인생도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택시운전을 포함해 안해본 일이 없었지만 점점 악화되는 건강으로 일이 힘들어졌고 결국 거리로 나 앉게 됐다. 2000년에 접어들 무렵 그렇게 노숙은 시작됐고 그때 당뇨병은 더욱 악화됐다. 부인과 하나 있는 딸과 헤어진 것도 그 무렵. 지금은 가족관계를 다 정리해 둘은 시골에 내려가 있다.

“안본지도 10년이 넘었네요. 중학생 딸이 하나 있는데 지금 저는 그애한테 죽은걸로 돼있어요. 죽고 싶은 때도 많았는데 그럴때마다 딸 하나 있는 것 얼굴이 떠올라 죽지도 못하겠더라구요.”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이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회. 성남교회에서 세례를 받기도 한 그는 가끔 교회에서 찾아와주는 일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성탄 축제가 있으면 예전에는 기분이라도 내서 가고 싶었지만 몸이 아픈 지금은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공허한 눈빛으로 천장만 바라봤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힘드니까 크게 바랄 것도 없어요. 솔직히 한 해가 지나 새해가 오면 여기서 나갈 걱정이 더 급합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풀빵 한 개, 희망 한 조각
    
조두선 씨 사연을 뒤로하고 나선 건물입구. 공원 입구 내리막길에는 낡은 난로 위에 물을 한가득 담은 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공원 앞 가게 주인이 추운 겨울이면 지나가는 손님이 커피로 몸이라도 녹이고 가라고 마련한 자리다.

30년이 넘은 낡은 난로 주위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이야기꽃을 피우기 위해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내리막길을 따라가다 다시 찾은 동자동 쪽방촌 입구. 도로변 한쪽에는 주황색 풀빵리어카가 한 대가 오전부터 세워져 있다. 그 안에는 검회색 풀빵틀에 준비된 반죽을 조금씩 담고 그 위로 단팥소를 채우는 손길이 분주하다. 단팥소 위로 다시 밀가루 반죽이 정성스레 씌워지면 몇분 안돼서 고소한 풀빵 익는 냄새가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지난 11월 초부터 이곳에서 풀빵 장사를 시작한 강동권 씨(58세, 남). 20여 년 넘게 이곳에서 생활한 그는 최근 사랑방마을공동체협동조합에서 창업자금 50만 원을 대출받아 이곳에서 희망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 풀빵 5개에 천 원. 정성껏 만든 봉지에 풀빵이 하나씩 담길 때마다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간다. 매일 오전 7시부터 12시간씩 이 곳을 지키며 일하는 그는 자신의 일로 자신을 세워가는 과정이 보람되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용산구 공원녹지과에서 임시직으로 몇 년간 근무하다 2년간 재활용 분리수거를 했지만 사고 후유증 재발로 일을 그만둔 후 7개월 동안 아무일도 할 수 없었다는 사정을 전했다. 하지만 요즘 몸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일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일용직노동자가 많은 동자동 쪽방촌의 경우 겨울철에는 건설현장에 일감이 많이 부족해 벌이 없이 겨울을 나는 경우가 많다. 마땅치 않은 겨울철 벌이 대안으로 마련된 희망풀빵리어카. 강 씨는 분주히 움직이는 손길 뒤로 못생기거나 터진 풀빵 한 개를 걷어내며 말했다.

“그래도 재료비, 가스비 빼고 나면 방세하고 밥값 정도는 마련할 수 있어요. 어떨 때는 3시간에 한 봉지도 팔기 어렵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훨씬 낫죠.”

자리를 벗어날 수 없어 당일도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한 그는 동자동 쪽방촌이 갖고 있는 아쉬운 점으로 알코올 중독 문제를 들었다. 이어 올해에만 알코올중독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만 5명이라며 그 중에는 40대 초ㆍ중반의 젊은 사람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텅빈 위장에 매일 여러병의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고 전하는 강 씨는 절제되지 않은 술로 젊음을 보내다 죽는 사람도 이곳에는 더러 있다고 말했다. 희망풀빵장사의 경우 주민 참여가 저조한 점 또한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다.

숙명여대를 비롯해 주위 장사가 잘되는 장소가 8곳 정도 있지만 정작 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화장실 가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마저도 제약을 받는 풀빵 장사의 경우 매일 여러면에서 제약을 받고 특히 추운 겨울에는 동장군과 긴 시간 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왠만한 남성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강 씨도 두툼한 털실로 발을 감싸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며들어오는 냉기는 좀처럼 참기 어려운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그에겐 희망이다. 일을 통해 무너진 자신을 세우고, 작지만 주위 사람을 도울 기회도 생기기 때문에 매일 희망을 저금하고 있다는 것. 3월까지 사업을 계속할 계획인 그는 작지만 자신에게는 이 일이 다시 일어서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강 씨는 지난달부터 교회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심적으로 안정되고 부지런함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는 중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교회에 다녀오면 한 주간 마음이 편해 좋다는 말도 전했다. 다가오는 새해 바람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이번 겨울은 교회가 사랑을 많이 베푸는 성탄이 되길 바란다는 것.

“새해 바람이요. 어찌됐던 동자동 주민 모두 건강하고 모두 하는 일 잘되길 바라는 마음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추위에 떠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줄어드는 겨울이 되길 기도할 뿐이죠.”

풀빵 리어커에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강동권 씨, 당뇨병으로 이젠 앉아있기도 힘든 조두선 씨, 그리고 동자동 쪽방촌 1천 가구에서 생활하는 주민의 한 해가 저물어간다. 삶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 새해에 바라는 이들의 소망은 소박하다. 지금 있는 곳에서 건강하게 약간의 희망을 바라보며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그 팍팍한 삶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았다. 얇은 벽 너머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또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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