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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꿈을 가진 사람만 이룰 수 있습니다”[신앙계 5월호] ‘한국 조선업의 아버지’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
이병왕 기자  |  wanglee@newsn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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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21  07: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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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조선업의 아버지'. 이 말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조선 산업에 일생을 바친 신동식 회장(한국해사기술)을 소개할 때 항상 붙는 수식어다. 1932년 생이지만 아직도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 10년 전 주변의 끈질긴 기도와 전도로 믿음을 갖게 돼 크리스천으로서 새 삶을 살고 있는 그를 <신앙계 5월호>가 만났다.


신동식 회장은 대대로 법관을 지낸 유학자 집안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부산으로 피난을 간 소년 신동식은 부산 앞바다에 들어온 미군 수송선에서 내리는 물건들의 개수를 점검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주 큰 배들이 부산 바다에 까맣게 떠 있었는데 배가 오면 그 안에서 탱크도 나오고 트럭도 나오고 병사들도 수 천 명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어요.”

배를 만들겠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그는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에 입학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했지만 막상 졸업을 하니 취업할 곳이 없었다. 당시 국내 조선 산업의 현실이었다. 할 수 없이 숙명여고에서 수학과 물리를 가르쳤다.

“배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 쳤는데 갈 곳이 없었습니다. 유학 갈 돈도 없었을 뿐 아니라 있어도 당시 유명한 조선과가 있었던 학교인 미국 MIT공과대학과 일본 동경대는 군함을 만들려고 조선과를 뒀기 때문에 외국 학생은 받아주지도 않았지요. 몸은 학교에 있었지만 마음은 저 멀리 바다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눈을 돌린 곳이 외국의 조선소였다. 당시 스웨덴에 세계 최대의 조선소인 코쿰(Koekums)라는 조선소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무작정 편지로 써서 보냈다. 놀랍게도 채용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그는 낮에는 용접과 철판을 자르고 밤에는 설계도면을 공부하고 주말에는 공과대학 교수에게 수업을 받으며 이론과 실제가 하나 되는 경험을 하였다.

조선업의 본고장인 영국에 가고 싶었던 그는 당시 선박과 조선소 설계 분야에서 최대 규모였던 하디 토빈 컨설팅 회사의 설계 기사로 영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958년. 스물여섯의 청년 신동식은 조선인들의 꿈이라는 영국 로이드선급협회의 국제선박검사관이 됐다. 한국인 최초이자 동양인 최초였다. 1760년 창립된 로이드선급협회는 당시 전 세계 선박의 설계와 건조 과정을 감독했다.

1961년 스물아홉의 신동식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요청으로 대한민국 조선업을 일으키는 일에 참여케 된다.

이후 그는 경제수서비서관이 돼 1969년 초대형 조선소 건설 계획을 포함한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오늘날 전 세계에 떠 있는 배 10척 중 7척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배일 정도로 조선 강국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일조했다.

“저보고 ‘조선업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어울리지 않습니다. 현대, 대우, 삼성 등 기업들의 투자와 노력 그리고 대학에서도 1등 기술자를 배출하는 등 전 조선인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이었죠.”

그가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가족들과 지인들의 전도 때문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큰 며느리는 교회에 나오셔야 손주를 만날 수 있다며 협박 아닌 협박으로 그를 교회에 인도했다.

많은 지인들이 그를 찾아와 한 번만 교회에 가자고 청원했으며, 그를 찾아와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그룹도 생겼다.

“아예 제 사무실로 도시락을 싸와서 같이 먹으며 성경을 공부시켜 줬어요. 그분들이 교회도 데리고 다니는데 안가본 교회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는 신앙을 갖게 된 후 여태까지 자신이 똑똑한 맛, 잘난 맛으로 자기중심의 삶을 살아왔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고 고백한다.

“내 인생을 내가 알지 못하는 힘이 나를 인도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내가 의지해야 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인터뷰 전문은 <신앙계 5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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