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찬 칼럼] 한국교회와 세대주의에 대한 단상 (1)

▲ 이필찬 교수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세대주의자이면서 자칭 개혁주의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세대주의가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기에 ‘세대주의자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세대주의자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요한계시록 21-22장의 ‘새예루살렘’을 ‘내가 본 천국’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라면 100% 세대주의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세대주의의 뿌리는 1907 대부흥 운동에 있다. 한국 교회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07년도에 1907년 대부흥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성서학자들이 모여 이와 관련된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다.

대부흥의 역사와 종말론의 관계가 밀접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1907년 대부흥운동과 요한계시록 해석의 관계>라는 제목의 논문을 써보기로 작정하고 발제를 자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때를 전후로 요한계시록 해설집이 많이 발간됐다.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 그 당시 한국 교회의 지도자 거의 모두가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관점을 가지고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때문이다.

심지어는 한국 장로교회의 영웅 길선주 목사님조차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다. 길 목사님은 1938년과 2002년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영웅이 필요했던 한국 교회는 현대판 시한부 종말론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면서도 길선주 목사님의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렇게 세대주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한국교회는 100년 동안 아무런 반성 없이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다.

목회 현장과 신앙의 현장에서 너무나도 뿌리 깊게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한국 교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2007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내걸었던 구호는‘1907년 어게인(again)’이었다. 물론 한국교회의 전통 가운데 좋은 점들이 많다. 그런 것들은 발전 계승해야겠지만 세대주의 종말론은 다시 어게인(again)하면 안 되지 않을까.

적어도 이단이 발흥하는데  이러한 세대주의 종말론과 세대주의적 성경 해석이 그 토양을 제공해 주고 있다면 더욱 더 말이다.

이제 한국 교회 미래의 100년을 내다보면서 이러한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분별하고 건강한 성경적 종말론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 적극적으로는 건강한 한국교회를 세우고, 소극적으로는 이단들로부터 한국 교회를 보호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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