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자동차 정비업계 독보적 입지 확보… 작은교회 및 목회자 후원에 앞장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실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의 3대 족장인 이들 중 특별한 어려움 없이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린 족장은 이삭이다.

이삭의 생을 보면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의 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굴곡 없는 뿐만 아니라 누리는 생을 보냈다. 하나님을 경외함은 물론이다.

국내 특장자동차 정비업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한 ㈜대산공사 대표 김대권 장로(염천교회)의 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삭의 생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믿음이 좋은 부모님의 신앙을 물려받은 것이나, 부친이 설립한 회사를 대를 이어 키워놓은 것이나, 인생의 굴곡 중 내리막에 부분에 해당하는 시기는 언제였는지 묻는 물음에 “특별히 그러한 시기는 없었다”고 대답할 만큼 말이다.

한국에서 자동차 자체가 귀했던 시절에 목탄차를 운전하며 사업을 했던 김대권 장로의 부친(고 김광호 집사)은 1962년 서울 청파동에 대산자동차정비공장을 세웠다. 1964년도에 ‘도로교통법’이라는 게 생기기 2년 전일 만큼 앞날을 내다본 선구자였다.

자동차를 좋아한 김대권 장로는 중학생 때부터 시간 나는 대로 공장에 나가 일을 도왔다. 아니 배웠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정식 직원으로 공장에서 계속 일을 했다. 한국 사회에 불기 시작한 자동차 붐으로 공장이 번창해져 1978년 서울 문래동으로 공장을 옮겼다.

공장은 여전히 잘 됐다. 그런데 그의 마음 한편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다. 요새 개념으로 말하면 자동차정비업이 레드오션이 돼 가고 있음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대산공사는 트럭을 전문으로 정비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블루오션이 있었다. 바로 중장비 정비업이었다. 건설업 호황에 따라 국내에 도입된 중장비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인지한 것이다.

그는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의 건설기계 유수 업체인 KATO사를 찾아가 떼를 쓰다시피 해서 중장비 교육을 받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후에 KATO사는 그의 기술력을 인정 국내 유일의 판매 대리점 계약을 체결했다.

이렇게 자동차 정비와 건설중장비 정비라는 두 날개를 달게 되니 공장은 더욱 번창해 갔다. 자동차와 중장비는 물론, 이 두 가지가 합쳐진 특수장비차량 이른바 ‘특장차 정비’라는 블루오션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다.

이에 1999년 넓은 공장 부지를 갖춘 지금의 경기도 곤지암 공장으로 이전했다. 서울서 경기도 곤지암으로의 이전은 많은 단골 고객들의 이탈을 예상한 가운데 내려진, 또 한 번의 블루오션을 위한 결단이었다. 많은 물량의 특장차와 중장비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곤지암으로 온 초기, 약간의 어려움을 겪을 때 김 장로 앞에 전혀 예측 못했던 또 다른 블루오션이 열렸다. 인천국제공항의 특장차들을 거의 독점적으로 정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독일에서 수입한 제설차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위해서 독일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설차에 대한 보험을 맡은 보험회사 측서 김 장로 회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일단 맡겨본 후 고치지 못하면 독일로 보내기로 하고 수리를 의뢰해 왔다.

김 장로의 회사는 해당 특장차를 직접 수리하거나 정비해본 적은 없지만 그간 다른 특장차들을 다뤄온 경험과 축적된 기술을 동원해 큰 어려움 없이 수리를 해 냄으로써, 공항 측과 특장차 정비에 대한 거래가 시작된 것이다.

김 장로는 자신이 블루오션을 찾아 나설 때마다 발견하게 됨은 물론 예상치 못했던 블루오션까지 덤으로 얻게 된 이 모든 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맡겨진 일에 충성하되 늘 깨어 있으려한 수고를 기쁘게 보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김대권 장로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회의나 갈등으로 고민했던 시절은 없었는지를 묻는 물음에 대해서도 “특별히 그러한 시기는 없었다”고 답을 한다.

김 장로의 부친은 말할 것도 없고, 순교하신 분이 있을 정도로 믿음이 좋았던 외가의 여인답게 그의 어머니(고 이인하 권사)는 특별히 믿음이 투철하셨다. 그 영향으로 그는 중ㆍ고등부, 대학부, 청년부를 거치는 동안 어느 한 순간도 흔들림 없는 믿음의 길을 걸었다.


그의 이러한 신앙은 장년이 돼서도 변함이 없었다.  41살의 젊은 나이에 장로 직분을 받은 배경에는 이런 신앙습관이 한몫 했다.

당시 염천교회는 교육관을 건축하며 주변 여러 집을 차례로 매입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김 장로는 교회에 살다시피 하며 집을 헐고 땅을 다지는 일을 거의 도맡아했다. 그 때 교인들의 신뢰가 장로 장립으로 이어졌다.

그가 대표로 있는 ㈜대산공사는 이제 현대자동차와 벤츠트럭 그리고 벤츠유니목 등 상용차정비와 일본 KATO사 장비 판매 및 서비스, 자그로를 포함한 독일 유수의 어텃치먼트회사들과 대리점 또는기술협력 관계를 맺고 있을 정도로 특장차 및 중장비 정비업계의 독보적 위상을 점하고 있다.

이러한 ㈜대산공사가 하나님의 기업으로 정직하게 우뚝 서기를 대표인 김대권 장로는 기도하고 있다. 더 많은 교회와 목회자 특히 작은교회와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섬길 수 있되, 부끄럽지 않게 번 물질로 섬길 수 있기를 위해서다.

“전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저 교회와 목회자들을 섬기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 위해 일하고 기도하고 섬기고 나아가 작은교회들과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섬기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받은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