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목사 최기용을 신출내기 목사로 초기화시키셨습니다”

25년간 사역하면서 지방, 그것도 사방 5백 미터 내에 가구라고는 50여호밖에 없는 시골작은 교회를 5백 명이 넘는 교인수를 가진 교회로 성장시켜 지역에서 나름 큰 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함은 물론, 한국교회 장자교단의 장자노회이자 가장 큰 노회의 노회장을 최근 지낸, 게다가 환갑을 눈 앞에 둔 중견 목회자가 개척에 나서 관심을 모은다.

▲ 최기용 목사
충청남도가 홍성군 신경리와 예산군 목리를 중심으로 조성 중인 내포신도시 내 제나우스 오피스텔에 내포영락교회를 개척, 지난해(2015년) 11월 22일 개척예배를 드린 이후 신출내기 목사로 자신을 리셋(Reset)시켜 사역 중인 최기용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그의 개척 목회를 교계 일부 중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들이 교인 일부와 함께 나가서 교회를 개척, 개척 초기부터 안정적인 목회를 하는 것과 같은 유형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의 개척 목회는 개척 성공률 1% 시대에 젊은 목회자들도 꺼리는, 이른바 ‘맨땅에 헤딩하기’식 개척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개척 멤버는 그의 아내와 장인, 장모 그리고 전에 사역한 교회 교인 1명해서 모두 5명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이른바 교단 내 중진이라 할 수 있는 그가 25년간 잘해 오던 안정된 목회를 접고 교회 개척에 나선 이유를 무척이나 궁금해 한다. 나름 뭔가 말 못할 사정, 이를테면 여자 문제나 돈 문제로 상당한 개척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좋게 말해서) 물러난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단호히 얘기한다. 결단코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고백한다. 흔히 목사들이 실족케 되는 대표적 원인인 ‘돈’ 문제와 ‘여자’ 문제는 아니지만, 목회자가 주의해야 할 또 다른 덕목 중 하나인 ‘명예’ 문제 때문이었노라고.

“40대 초반의 나이에 도지사와 국회의원이 찾아와 협조를 구할 정도로 경기도 화성군에서 나름 성공한 목회자로 자리매김한 후, 한국교회 장자교단의 최대·최고(最古) 노회의 주요 임원직을 거쳐 2011년 노회장을 맡으면서 조금씩 명예 문제에 발목이 잡히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보다 큰 목회를 꿈꾸게 된 것이다. 당시 자신이 담임으로 사역하던 교회는 새 예배당을 지었고, 도의 지원으로 노인요양원을 지어 운영 중일 만큼 자리가 잡힌 데다가, 지역 특성상 더 이상 눈에 띌만한 큰 성장이 힘들 상황이었는바, 목회 환경이 훨씬 나은 교회를 맡아서 지금껏 해온 것처럼 사역한다면 정말 큰 교회를 일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그러한 생각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자신의 인생과 목회의 제2막에 대한 비전이 아닌가 생각돼 이 문제를 놓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퇴임하는 날까지 6개월여를 매일 강단에서 잠을 자며 기도했을 정도다.) 그리고는 장로님들에게 한 달 후에 교회를 떠나겠다고 선포한 후, 한 달이 되는 주일에 성도들에게 사임 사실을 발표하고 교회를 떠났다.

교회를 사임한 그는 한두 달이면 목회 여건이 나은 교회들 가운데 한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25년간 목회에만 전념하느라 소홀했던 아내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전개된 그의 상황은 전혀 다르게 진행됐다. 담임목사 청빙 지원서를 여러 곳 제출했지만 연락오는 곳은 없었다. 60대를 눈앞에 둔 나이와 ‘노회장’을 지낸 경력이 장애가 된 것이다. 특히 많은 교회들로부터 “목사님을 모시면 저희야 좋지만 목사님을 모시기에는 우리 교회가 너무도 부족합니다”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1년하고도 6개월이 흘렀다. 25년간 교회 사택에서만 살아 왔기에 집하나 장만해 두지 않은데다가, (지극히 정상적으로 산출돼 지급됐기에) 받은 퇴직금으로는 전세조차 얻기 어려웠기에 이 기간 동안 최 목사와 그의 아내는 딸네 집에서 얹혀 지냈다.

집이 비좁아서 매일 아침이면 집을 비워 주느라 갈 데도 없이 집을 나서야 했다. 날이 괜찮을 땐 공원에서, 추울 땐 인근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운 후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친구가 장로로 있는 다른 교단의 교회로부터 헌신예배 강사로 초빙을 받아 말씀을 전했다. 예배가 폐한 후 그 교회의 담임 목사가 “목사님, 말씀이 이렇게 좋은데 왜 쉬고 계세요. 저희 교회가 개척 자금 일부를 후원할 테니 오라는 곳을 기다리지 마시고 교회를 개척해 보세요”라며 개척을 권유했다.

그는 ‘젊은 목회자들도 개척을 거리는 판국인데 이 나이에 개척은 무슨 개척. 사역을 다시 시작한다면 선교사로나 나가는 게 맞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말하면 무안해 할 상대방을 생각해 “좀 생각해보겠노라”는 말로 완곡히 거절했다.

얼마 후, 이 얘기를 친한 친구 목사에게 전하자 친구 목사는 “기왕이면 현재 조성되고 있는 충남 내포신도시에서 개척을 해 보라”며 한 술 더 떠 구체적 지명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개척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데다가 동네 자체도 완전히 낯선 곳이어서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얼마 후인 지난해(2015년) 가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내와 함께 집을 나온 그는 갑자기 친구 목사 말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바람도 쐴 겸 내포에나 가보자”고 아내에게 말한 후 차를 몰고 내포신도시로 향했다. 말 그대로 바람도 쐴 겸해서다.

“내포신도시에 도착해서 차로 도시를 한 바퀴 둘러본 순간 ‘여기다’하는 생각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규모가 큰 교회가 없는데다가 작은 교회마저 몇 개 없기에 ‘입지조건이 좋구나. 됐다’라고 생각돼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런 생각 대신 이곳의 불신 영혼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너무도 강하게 전달된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의 2막이자 목회의 2막을 내포신도시 영혼 구원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주님께 충성, 타인에 겸손, 자신에 진실’이라는 삶의 모토로 다시 한 번 무장시켜 자신을 목사 초기화로 리셋을 시켜 교회 개척에 나선 끝에 지난해(2015년) 11월 22일 개척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 지난해 11월 22일의 개척예배 모습

이렇게 교회를 개척한 그는 지난 1월 3일 신년 첫 주일예배를 잊을 수 없다. “내가 이 일(내포신도시 불신 영원 구원)을 위해서 너를 이곳에 보내었노라”고 하는 하나님의 분명한 싸인을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개척 후 한 동안은 주일예배에는 5명의 개척멤버들과, 새벽예배에는 아내와 단 둘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외롭던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오피스텔 사는 사람들이 간간이 찾아와 함께 예배드리기 시작해 10여명으로 늘어나더니 신년 첫 주일 예배 때는 어디서들 왔는지 정확히 23명이 예배를 드린 겁니다.”

“개척 후 한 달여 낙심하지 않고 수고한 제 수고를 아시고 새해에도 낙망하지 말고 힘을 내 사역하라고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분들로 저는 생각합니다. 이 분들이 정말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열심히 섬기다 보면 주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우리 교회로 보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랫동안 목회하면서 잊고 있었던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과 그 영혼이 추수됨에 대한 기쁨을 다시금 맛보기에, 나이 60이 다 돼서 처음 해보는 (새신자들을 위한) 커피 타기마저 그저 행복하기만 한 최기용 목사.

△주님께 충성, 타인에게 겸손, 자신에게 진실한 목회 △생명력 있는 예배에 초점을 두는 목회 △개척교회이지만 부담 없는 행복한 교회생활로 이끄는 목회 △삶으로 기도하는 목회를 통해서 내포신도시의 힘들고 지친 영혼들과 함께 비전을 공유하며 나아가기 원하는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결실을 볼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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