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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제 꿈은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입니다”[신앙계 2월호] 나겸일 인천 주안장로교회 원로목사
이병왕 기자  |  wanglee@newsn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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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21  01: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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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서 다듬어진 겸손한 인품, 학구적인 면모, 말씀과 성령 충만이 조화된 균형 잡힌 영성과 외모까지 모든 면을 두루 갖춘 ‘목사 중의 목사’라는 별명을 가진 나겸일 인천 주안장로교회 원로목사. 200여 명이 출석하던 교회를, 부임 후 36년이 지난 오늘날 재적성도 10만 명의 교회로 성장시켰던 그를 <신앙계 2월호>가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에 40일 특별새벽기도회와 총동원 전도,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 비전을 전파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쳐온 그의 목회 외형만 보고 화려하다, 부럽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폭발적인 부흥과 수많은 성도들을 마주했던 그의 깊은 내면에는 죽음과 같은 고뇌와 부담감이 항상 뒤따랐다. 영혼을 맡은 자로서의 부담감을 이겨내기 위해 그는 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했다.

죽음을 불사한 40일 금식기도, 새벽기도 설교를 위한 철야기도, 월 1회 성경통독을 하며 성도들에게 선포할 말씀의 깊이를 다졌다. 그의 삶을 주관하신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 뒤에서 인간 나겸일의 주님을 향한 헌신과 순종, 사랑이 있었다. 그의 목회는 바로 생명을 건 목회였다.

충남 부여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나겸일 목사는 2남 7녀 중 장남이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처음 출석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 그는 이성봉 목사의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주의 종이 될 것을 서원했다.

집안의 반대는 극심했다. 부모는 장남이자 장손이었던 아들이 교회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부모님을 위한 기도가 더욱 간절해졌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 후 믿음생활의 열의는 시들해졌다. 이따금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서원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한 청년 나겸일은 주의 종의 사명은 잊어버리고 세상에서 엘리트로 성공하리라 다짐한다. 종로에서 잘 나가는 학원 강사로 7년간 일하며 큰 돈을 벌었다. 이후 그는 사회적으로 확실한 성공을 원해 행정고사에 응시했지만 낙방의 쓴 맛을 봣다.

“행정고시에 떨어진 후 신촌의 숙소로 가는 총알택시에 탑승했어요. 운전자까지 다섯 명이 탔는데 갑자기 쾅 소리가 나며 불빛이 번쩍거렸지요. 정신을 차고 보니 전봇대가 바로 제 앞에까지 와있었습니다. 제 옆의 운전기사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다른 사람도 모두 피투성이였어요. 그런데 저만 전혀 상한 데가 없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었지요.”

그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리다가 문득, 그 사고가 운전자 잘못이 아니라 주의 종의 길을 피하려는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디선가 ‘네가 요나다’라는 음성이 들렸어요. 만약 제가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생명도 거두어 가실 것만 같았죠.” 그의 나이 33세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 무학교회와 영은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은 거친 후 38세에 늦은 목사안수를 받고 주안장로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늦게 신학을 한 만큼 남들보다 몇배 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그의 삶의 철칙은 “죽도록 충성하라”가 됐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주안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그러던 중 나 목사와 주안교회에 있어서 역사의 전환점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사십대 초반이었습니다. 급성간암이었습니다. (중략) 20일 후 완치 판정을 받았어요. 주치의가 이런 기적은 처음 본다며 하나님의 기적임을 인정했습니다. 할렐루야!”

기적은 삽시간에 소문이 났다. 죽어가던 목사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교회에는 수많은 병든 자들이 찾아왔다.

그가 간암에서 회복된 이후 교회 역사상 가장 부흥하던 때가 찾아온 것이다.이 체험을 통해 말씀과 성령이 조화를 이루는 완전히 거듭난 새사람으로 변했고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비전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주안대학원대학교 이사장을 맡아 선교학 석사, 박사 등의 인재를 배출하여 한국교회에 기여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남은 인생 바라는 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저는 건강이 허럭되는 한 사명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그 사명은 바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입니다. 그것이 제가 지금까지 생명을 걸고 목회한 이유이자 주님께서 주신 비전입니다.”

[인터뷰 원문은 <신앙계 2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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