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짓기와 이에 근거한 생존방식의 결과라면 순직 또는 다른 용어 써야


흔히 해방 직후에 좌익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기독교인들의 죽음을 ‘모두’ 순교로 봐서 이들을 순교자로 추서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후손들이나 관계자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9일 오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342회 학술발표회’에서다.

이날 발제를 한 최태육 목사(예수님의교회)는 ‘해방 직후 기독교의 진영 선택과 순교’라는 제목의 소논문에서 “인류가 존재하면서부터 있었던 ‘우리와 그들에 대한 구별 짓기’와 ‘타 진영에 속한 사람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는 삶의 방식’ 때문에 발생된 희생은 그리스도의 순교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따라서 최 목사는 “해방 이후 특정 진영(미군정을 중심으로 한 우익진영)에 속해 있으면서 우리와 그들(좌익 진영)을 이념에 근거해 구별 짓고, 배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은 순교라기보다는 순직 혹은 다른 개념으로 설명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구별의 이해를 위해서 최 목사는 해방 직후의 두 실존 기독교인의 자익에 희한 희생(죽임 당함)을 예로 들었다.

그는 “좌익 관련자 색출에 앞장서 자신의 마을 주민 30여명이 경찰들에 학살당하게 했던, 그래서 그 일로 인해 1949년 5월 25일 (음력) 삼일기도회를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서다가 공산 폭도들에 의해 칼에 찔려 숨진 경주 안강면 ◯◯리교회 심◯◯ 장로의 경우는 순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서기훈 목사

반면에 “1951년 1월 8일 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한 강원도 철원 장흥교회 서기훈 목사의 경우 그의 죽음은 순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대한청연단원들이 부역혐의자 가족을 처형하기로 하고 1차로 3명을 처형했을 때, 소식을 들은 서 목사가 ‘예수의 사랑을 전하라고 했지 사람을 죽이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청년들을 질책한 후 부력혐의자 가족들을 모두 귀가시킨 행동 때문이다.

최 목사는 “그는 (우익 진영인)대한청년단 고문이었지만, 타 진영(좌익에 속한 사람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는 삶의 방식을 살지 않았다”면서 “그는 죽고 죽이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서로를 살릴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순교자”라고 규정했다.

이에 최 목사는 “순교는, 인류가 존재하면서부터 있었던 ‘우리와 그들에 대한 구별 짓기’와 이에 근거한 우리의 생존 방식에 대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공한다”며 “순교는 인간사회는 물론 자연과의 평화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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