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계 신년호]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 손자 손명원 회장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손자이자, 대한민국 초대 해군 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 손컨설팅 회장. 할아버지인 손정도 목사로부터 배운 ‘걸레 철학’에 기초한 ‘걸레 믿음’이 자신의 인생을 인생답게 했다고 고백하는 그를 <신앙계> 2016년도 신년호가 만났다.


손명원 회장의 할아버지 손정도 목사는 독립운동가로 임시정부에서 위원장을 역임하며 ‘걸레 철학’을 토대로 지역과 계층, 살아온 배경이 다른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비록 나는 더러워지더라도 내가 지나간 자리는 깨끗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매일 필요로 하지만 자신의 일을 성실히 완수한 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또 다시 내일의 필요를 위해 기다리는 것이 걸레’라는, 할아버지 손정도 목사의 ‘걸레 철학’은 손명원 회장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독립운동가의 손자이자 해군 참모총장의 장남인 그는 요샛말로 엄친아다. 그러나 그는 엄친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했다.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은 손 회장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은 이 ‘걸레 철학’을 강조함과 동시에 ‘남자는 독립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스스로 판단하고 헤쳐 나가는 힘을 키우지 않고서는 삶의 큰 역경에 부딪쳤을 때 이겨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제 자신이 별로 인생의 계획을 세우지 않고 움직였던 시간이 있었어요. 해군사관학교에 가로가 한 꿈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해군에 너 정도는 얼마든지 있다. 너는 엔지니어가 돼라’고 하셨죠.

마침 1957년 독일 대사로 가 계실 때 독일에 아우토반을 달리며 제게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을 배워 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엔지니어가 뭔지도 모르다가 대학 진학 때 그 공부가 토목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토목 엔지니어가 된 것이지요.”

미국으로 대학을 가게 되던 당시 한국은 4.19와 5.16 등으로 사정이 좋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지원이 끊기고 말았다. 그의 나이 19세, 동생 나이 17세 때다. 둘은 독립할 수밖에 없었다.

농장에서 지붕에 짚을 놓는 일부터 소똥을 치우고 소 풀을 먹이며 생소한 육체노동을 경험하기도 하고, 택시 운전 등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할 때 계약관계를 정확히 하지 않아 첫 주에 생각지도 못한 주급을 받아 눈물을 쏙 뺀 적도 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그때의 경험은 저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도 혼자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갖출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현대미포조선(1985-1987년)의 사장 재임 시 635억 매출에 5억의 적자를 내던 회사를 3년 만에 2천 600억 매출에 120억 흑자를 내는 회사로 탈바꿈 시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서 대학 졸업 후 워싱턴의 통신회사에서 근무하다가 33세의 나이에 손컨설팅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차려 경영자의 세계에 첫 발을 디딘 그는 한국에 돌아와 현대엔지니어링,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등에서 중역을 지냈으며 현대미포조선, 쌍용자동차, 맥슨 등에서 대표이사를 지냈다.

현재 손컨설팅컴퍼니를 통해 ‘40여년의 전문 경영인 생활’이라는 흔치 않은 이력으로 자신이 쌓아온 경영노하우를 나누고 있는 그는, 2016년을 맞는 대한민국의 모든이들에게 이렇게 덕담을 전했다.

“행복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렇게 시작하면 감사할 일이 넘쳐납니다.”

[인터뷰 원문은 <신앙계> 2016년 신년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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